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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1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 8:12-16 등록일자 2010.10.17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에는 기질적인 틀이나 성격의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이 있습니다. 또 미세한 비진리가 남아 있어서 순간순간 스치는 육신의 생각이 있지요. 환경에서 오는 충만함에 가려져 있는 육신의 생각과 육체의 결여에서 비롯되는 육신의 생각도 있습니다. 오늘은 진리의 틀에서 비롯된 육신의 생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진리의 틀에서 비롯되는 육신의 생각들

‘의의 틀’과 ‘선의 틀’은 진리의 말씀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이것이 옳다. 이것이 선하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단단하게 굳힌 것입니다. 이 선의 틀과 의의 틀은 자신이 아는 말씀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기 때문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 깨닫지를 못합니다. 더구나 그 틀에서 비롯된 생각이 들어맞는 상황도 간혹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자신하게 되지요. 이런 진리의 틀에 대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일꾼이, 목자가 양 떼를 용서하고 감싸 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때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이 선이다. 영혼을 갈무리하는 일꾼은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선의 틀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양 떼를 갈무리할 때 자신도 어찌하든 영혼을 용서하고 감싸 주려고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용서만 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도 똑같은 태도를 취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돌이키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구원받기조차 어려운 영혼을 무조건 감싸 주는 것이 진정한 선일까요? 이때는 영혼이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진정한 선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에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했습니다. 믿음의 형제가 범죄하면 죄에서 돌이키도록 바로잡아 주는 것이 일꾼의 역할이며 이것이 선이요, 사랑입니다.

물론 이렇게 할 때는 어떤 감정도 없이 온유한 심령으로 해야 합니다. 또 지혜로운 사람은 범죄한 사람을 바로잡아 주는 입장에 있다 해도 자신도 함께 돌아보는 겸비한 자세를 가지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범죄한 영혼에게 권면하는 일꾼을 보면 자기 의가 발동합니다. ‘사랑은 허물을 덮어 주는 것 아닌가. 저 일꾼은 사랑이 부족한 것 같다.’며 자기 의 속에서 그 일꾼을 바라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범죄에 대한 징계로 물질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구제합니다. 물론 상대의 믿음에 따라 이렇게 구제하는 것이 그 영혼을 살리는 데에 유익한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에 그 영혼이 죄에서 떠나는 것을 오히려 막아 버릴 수도 있지요. 선의 틀에서 나온 육신의 생각 때문에 그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꾼들은 이와 반대로 양 떼를 지적하고 권면하는 것이 사랑이고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맡은 양 떼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은 초신자 때부터 그 정도의 말씀은 지켰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또 상대가 버거워 해도 믿음의 분량에 넘치도록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 상대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양 떼의 허물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용서하고 덮어 줘야 하는 상황에서도 즉시 지적하고 권면합니다. 자기 생각의 틀에 갇혀서 그 영혼의 마음이 어떤지 상대의 형편을 살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경험이나 자기 생각의 한계 안에서 만든 의와 틀은 대부분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이것이 선한데, 이것이 의로운데.’ 하면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물론 진리가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리는 절대불변이지요. 다만 물이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바뀔 수 있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진리를 적용하는 모양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때그때 진리를 어떤 모양으로 적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성령의 음성과 주관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는 사람은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그 상황을 바로 파악할 수가 있지요. 진리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금방 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육아 경험이 많은 어머니들 중에는 아기 울음소리만 듣고도 아기에게 필요한 것을 바로 알아채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배고파서 우는지, 안아달라고 우는지 알지요. 이는 육아법만 체득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기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있을 때 가능하지요.

신앙생활이나 사명 감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면 그때그때 무엇이 선인지, 의로운 것인지, 진리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지요.

2.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려면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려면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양심의 악은 물론 본성의 악까지 발견하여 벗어 버려야 하지요. 히브리서 10장 22절에 보면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합니다. 마음의 비진리 중에는 발견하기가 쉬운 것도 있고 비교적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양심 속의 악이나 본성 속의 악은 비교적 어려운 편에 속하지요.

이런 악이 있으면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진리의 틀을 만들게 됩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도 이 잘못된 진리의 틀에서 육신의 생각이 나오지요. 결국 성령의 음성을 거스르게 됩니다. 따라서 양심의 악과 본성의 악을 반드시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 두 개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영혼육 설교나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양심의 악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양심은 각 사람이 선, 악이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주관적인 기준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양심에 거리끼는 것은 악이고 거리끼지 않는 것은 악이 아니라고 인식하지요. 그런데 양심은 자기 나름대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고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또 이 양심에조차 비진리가 많이 포함돼 있지요. 세상이 악해질수록 사람들의 양심도 점점 더 비진리에 물들고 악에 대해 무뎌집니다. 그래서 양심은 절대적인 선의 잣대가 될 수가 없지요.

여러분 자신의 양심만 살펴보아도 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의 양심과 지금의 양심을 비교해 보면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실 것입니다. 예전에는 악이라고 느끼지 못한 것도 지금은 악으로 느껴지지요.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서 양심이 정화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심의 악을 많이 버렸는데도 미세한 악이 남아서 의지와 상관없이 성령의 음성을 거스르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옳다고 판단하여 어떤 행동을 취했는데 그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옳지 않은 경우가 있지요.

그러므로 미세한 악까지 숨은그림찾기를 하듯이 구석구석 찾아내야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사랑장, 팔복, 선의 4단계, 일곱 영, 이런 설교를 들으면서 나를 발견하면 되지요. 말씀을 들으면서 내게 해당되는 것들을 찾아서 버리면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그런 작업을 지금 많이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얼마나 성결되고자 또 영을 사모하여 들어가고자 노력들을 하십니까? 요즘 많이들 하십니다.

이제 정녕히 정신을 차릴 때입니다. 죄 지을 마음이 있으니까 고민을 하는 거지. 죄지을 마음만 없다면 고민 하나도 안 돼요. 하나님 사랑하고, 성결돼 가고, 말씀대로 살고, 지키고, 행하고, 충성하면 되는 것 아니에요? 이전의 것이 지금까지 있었던 사망에 이르는 죄로 인해서 상급도 다 없어져 무로 돌아갔지만 이제 초신자처럼 이제부터 신앙생활 잘하면 되잖아요? 그래서 누구보다도 빨리 성결되고 누구보다도 빨리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간다면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저한 죄를 지으면 회개도 어렵고 돌이키기도 어렵고 그럴 힘이 또 오질 않으니 연단을 받아도 한참 받아야 하지요.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용서받으면 그때부터 시작해야 되니까 얼마나 많은 세월을 까먹어야 돼요. 그러지만 어떻게 해요? 우선 구원받아야 되고 천국 가긴 가야 되는데 기왕이면 좋은 천국 가려면 이렇게 노력하다가 보면 남보다 몇 곱절 더 하면 새 예루살렘 갈 수 있는 거지요.

우리가 찾고자 노력하며 기도하면 성령께서 양심 속의 미세한 악을 발견케 해 주십니다. 예를 들어 펜이 필요한데 마침 옆자리에 펜이 있어서 말도 없이 써 버린 경험이 있으신지요? 허락도 없이 남의 물건을 마음대로 취급했으니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도적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렇게 했다고 해 봐요. ‘아, 나 도적이다’ 할 사람 어디 있습니까? 전에 십계명에 대해 하나님이 풀어 주실 때 ‘도적질하지 말라’ 거기에도 나오지요? 자기 아버지 것 물건을 내가 아버지 허락 없이 썼다 해도 그것도 도적이라 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교회 당회장이면서도 아버지 것 일체 쓰지 않아요. 하나님 것 물품, 성물 일체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듣기 전에는 ‘친한 사이인데 뭐. 물어보나마나 쓰라고 했을 거야. 펜 좀 쓰는 게 어때서?’ 이런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지요? 이런 작은 불의의 행함으로도 양심의 가책을 받는 분들이 많지요.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으려면 반드시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해서 양심의 미세한 악도 뽑아 버려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본성 속의 악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령의 음성을 좇는 대신 ‘육신의 생각’과 ‘육체의 소욕’을 따르기 때문이지요. 이 둘 중에서 우선 육신의 생각을 크게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 세 단계 중에서도 셋째 단계 곧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을 더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단계의 육신의 생각은 스스로 발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으려면 반드시 발견해서 깨뜨려야 합니다. 깨뜨리는 방법은 양심의 악, 본성의 악 등 숨어 있는 악까지 찾아내서 버리는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까지 구석구석 깨끗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 진정 ‘선하다’ 인정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10-18 오후 10:30:53 Posted
2010-11-20 오후 7:14:3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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