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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1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 8:12-16 등록일자 2010.10.03
1.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들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에는 기 속에 깊이 감춰져 있는 기질적인 틀, 성장하면서 만든 성격의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이 있습니다. 또 미세한 비진리를 버리지 못해서 순간순간 스치는 육신의 생각이 있지요. 환경에서 오는 충만함에 가려져 있는 육신의 생각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도 영육 간에 좋은 환경 속에 있다 보니 항상 영의 생각을 한다고 착각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막상 눈앞에 어떤 연단이 오면 충만함이 사라져 버리지요. 마음에 이룬 진리의 분량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겉마음만 충만한 신앙생활이 돼서는 안 됩니다. 깊은 마음까지 할례해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와야지요.

물론 믿음의 반석에 선 사람은 설령 어떤 연단이 온다고 해도 마음의 기쁨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기쁨, 은혜, 믿음이 금방 떠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중심 속에서 나오는 온전한 충만함, 어떤 상황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충만함을 이루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 수가 있지요. 하지만 아무리 반석에 섰다 해도 세상에 눈을 돌리고 세상을 사랑하면 자연히 믿음도 식어지고 은혜도 충만함도 식어집니다. 그래서 영으로 들어간 것과는 다르지요. 영으로 들어가면 믿음이 식어진다든가 은혜나 성령 충만함을 잃는다든가 이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왜일까요? 영이라는 것은 변개하거나 간사한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에는 육체의 결여에서 비롯되는 육신의 생각도 있습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여러 발달 단계를 거칩니다. 각 단계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반드시 경험하고 훈련받아야 하는 것들이 있지요. 육체의 결여란 이 중 어떤 분야가 결핍되어 성인이 된 후에도 그 결핍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는 훈련을 받습니다. 이때 이 훈련을 잘 받지 못한 사람은 성장해서도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집중을 잘하지 못합니다. 이 결핍이 신앙생활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설교 시간이나 교육 시간에 말씀을 집중하여 듣지 못합니다. 또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의 말을 경청하지 못하기도 하지요. 일꾼들의 경우 윗사람의 지시사항을 귀담아듣지 못하거나 명심하지 못해서 실수하기도 합니다.

2. 육체의 결여가 영적 성장에 미치는 영향

제가 단에서 어떤 일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성경적인 방법론은 이것입니다” 하고 말씀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히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도 간혹 어떤 일꾼들은 그 말씀을 명심하지 못합니다. 기억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마음은 아닌데도 말씀이 마음에 양식이 되어 있지 않으니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생각을 동원해서 육신의 생각 가운데 일하기도 하고요.

또 어떤 사람은 성장기에 고립된 환경에서 자라서 의사소통 능력이나 교감 능력이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표현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부족합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데 매사에 주변 사람의 마음에 맞춰 주지를 못합니다. 자신의 경험 안에서 즉 자기 생각의 한계 안에서 ‘이것이 좋다. 저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도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은 후에 답을 해야 합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면 그 뜻을 알 수 있는데 끝까지 듣지도 않고 중간에 상대의 말을 끊고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부터 하게 되지요. 설령 내가 아는 내용을 말해도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답을 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윗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윗사람 말을 중간에 끊는 것은 실례가 됩니다. 그것도 교육 과정에 잘못 배워 나온 것이지요.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정확한 답을 알 수 있고, 중간에 말을 끊게 되면 내 생각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를 판단하게 되고 실례를 범하는 것이 되지요.

이런 것까지도 하나하나 고쳐 나가면 영으로 들어가는 데 유익이 됩니다. 무엇이 육체의 결여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일부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런 것까지라도 하나하나 변화시켜 나가면 결국은 몇 달이면 다 버릴 수 있습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새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예전에 제가 만지는 것마다 갑자기 전기가 통하는 거예요. 설교할 때도 마이크를 잡으면 ‘팍’ 하고 불꽃이 번쩍 튀고 자동차 문을 열어도, 누구와 악수를 해도, 옷을 만져도, 세수를 하려고 물에 손을 넣어도 번쩍번쩍 불꽃이 나는 거예요. 기도해도 안 되고 물리쳐도 안 되고 한 6개월을 그랬는데 어느 날 영감이 오는 거예요.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가?’ ‘아!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범사에 조심하라는 뜻이구나’ 우리 주님은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셨다’는 말씀을 떠올려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습관이 되도록 하셨구나’ 이걸 깨닫고 나니까 바로 없어져 버렸습니다. 만약에 2개월 정도 되어서 깨닫게 해 주셨다면, 완전히 몸에 밴 습관이 되지 않아서 또 옛날 버릇이 나올 수도 있지요. 그러나 6개월 정도를 그렇게 지내니 세월이 오래 흘렀어도 이제는 완전히 습관이 되어서 옛날 버릇이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까지도 하나님이 고쳐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어도 간음이라고 했습니다. 간음은 구약 성경에 돌로 쳐 죽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죄악이 관영한 마지막 때에 성결의 복음이 아니면 안 되고, 수많은 사람 지옥으로 가게 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훈련시키시는 거예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최고의 권능으로 입혀 왔고 앞으로도 입혀 갈 것이고, 차원 적응훈련을 통해 용서 못할 죄인일지라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되도록 훈련을 시키고 계신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퇴폐로 물들어 있습니다. TV, 인터넷, 컴퓨터, 핸드폰 등 세계에서 알아주는 나라이지요. 그러니 초등학생도, 중·고등학생도 접하는 게 음란물, 컴퓨터를 열어도 음란물, 핸드폰에도 음란물이 나온다 하지요. 인터넷에도 음란물, TV를 틀면 음란물, 그런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니 어떻게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지킵니까. 끊어 버리고 보지 않아야 하는데, 끊지 않고 보면 입력될 수밖에 없고 입력되면 호기심이 생기고 이걸 이겨낼 힘이 없는 거예요.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 보면 또 보고 싶고. 그래서 점점 입력되고 나중에는 사망의 길로 가는 죄들을 지어 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부모님들 정신 차려야 됩니다. 이런 말을 단에서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그러나 해야 돼요. 그래서 성도들이 지금 근본의 죄까지 회개하게 만드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지금 한 달, 일주일간을 눈물로 보내는 거예요. 그래도 알건 알고 대처할 건 대처하고 기도할 건 기도해야지 다 지옥 가게 놔둘 수는 없지요.

그래서 가정생활, 사회생활, 직장생활 또 학교생활에서 제대로 잘 배우고 따라 해야 하는데 그리 못한 데서 결여가 많이 있습니다. 기도도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중심을 다해 힘쓰고 애써 우리 주님이 기도하신 대로 따라 해야 하는 거예요. 방언을 해도 제대로 배워서 해야 합니다. 잘못 배워서 하면 방언도 하나님께서 듣기 싫은 방언이 될 수도 있지요. 배울 것은 배우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합니다.

성격 형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용한 부모님 밑에서 배우고 보고 대화하면서 자랐다면 또 조용하고 온유한 사람이 될 것인데, 부모님이 싸우고 혈기 내고 소리 지르고 하는 데서 성장했다면 그 자녀도 그렇게 닮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봐서는 안 될 것은 보지 말라는 거예요. 천국 가는 데는 전혀 유익이 안 돼요. 영으로 들어가는 데는 전혀 유익이 안 돼요. 그러니까 무익한 육을 끊어 버리지 않고는 영으로 절대 못 들어가요. 하나하나 끊어 버렸을 때 영으로 들어가고 또 영으로 들어가면 너무 행복하지요.

3. 육체의 결여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

이렇게 육체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혼의 지배를 받기가 더 쉽습니다. 혼을 주관하는 사단이 진리를 행하지 못하도록 훼방할 요인이 많지요. 그래서 육의 분야의 결여도 채워야지만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 결여는 자신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쉽게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만 극복할 수가 있지요.

그 방법론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먼저 진리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듣고 배우면서 이 진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비춰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영육 간에 알아야 할 것, 갖춰야 할 것, 다듬어야 할 것을 깨달을 수 있지요. 기도하면 성령께서 예전 일을 떠올려 주셔서 자신의 결여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해 주시기도 합니다.

또한 감동함을 입어 기도하면 과거에 지었던 죄까지 다 떠올려 주시지요. 초등학교 때 부모님 지갑에서 돈 훔쳤던 것도 떠오르고 유치원 다닐 때 부모님이 십일조 내라고 주셨는데 구멍가게에서 과자 사 먹은 것도 다 떠올려 주세요. 낱낱이 회개해서 하나님과 담이 없도록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부르짖어 중심으로 기도를 올려야 깨우칠 수 있습니다. 대충 기도해 놓고 “나는 안 떠오른다.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안 되지요.

제 경험으로 봐서 성령 충만하게 부르짖어 기도하면 성령이 깨우쳐 주세요. 전혀 기억지도 못하고 잊어버린 것, 전혀 기억할 수도 없는 것까지 떠올려 주시지요. 하나님과 죄의 담이 되는 것을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런 것이 성령의 능력이지요.

기도하면서 진리에 위배되는 것이 발견되면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령의 소욕을 좇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하지요. 이때 불같은 기도를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이유는 성령의 소욕을 좇을 힘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무엇보다도 진리를 바르게 깨닫기 위함입니다.

육체의 결여가 있는 상태에서 말씀을 문자적으로 또는 자기 생각의 틀 안에서 이해하면 또다시 잘못된 진리의 틀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 안다는 것이 결여를 극복하는 데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지요.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성령의 감동 속에 진리를 바르게 깨우치고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한계 안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달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열심히 행해나가면 육체의 결여도 점점 채워집니다. 그래서 주의 교양을 이루면 영육 간에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지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2010-10-05 오전 1:00:25 Posted
2010-10-09 오전 1:12:4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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