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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1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 8:12-16 등록일자 2010.09.26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으려면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명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하나님의 자녀 된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이지요. 만일 ‘우리는 피조물인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한다면 사단의 음성이니 절대로 귀 기울이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보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명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온전하시니 하나님의 자녀들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탁하시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라! 온전하라! 완전하라! 성결돼라! 명령하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닮은 참 자녀가 되는 과정에는 죄악을 벗어 버리는 과정과 함께 온전해지는 과정이 포함됩니다. 죄악은 당연히 버려야 하는 것이며 부족함은 채우고 모난 부분은 갈고 닦아서 온전함도 이뤄야 하지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한계를 극복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닮은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육신의 생각 셋째 단계, 곧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은 명백한 비진리를 어느 정도 버린 단계에서 주로 나옵니다.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하고 시기 질투도 안 하고 누구 미워하지도 않고 누구와 화평 깨는 것도 아니고 판단, 정죄도 않고 그만큼 악이 버려졌고 선하다고 하는 단계에 들어간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는 과정은 거룩함에 더하여 온전함을 이루는 과정에 해당한다고 할 수가 있지요. 믿음의 3단계쯤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이 많이 깨진 상태입니다. 물론 믿음의 3단계 1%부터 10%, 20%는 육신의 생각이 많지만 계속 깨뜨려서 60% 정도 들어가면 육신의 생각도 절반 이상이 버려졌고 육체의 일을 물론 행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모르는 초신자가 믿음의 1단계에서 육체의 일을 행하면 하나님이 어린아이 취급을 하시기 때문에 잘못해도 봐 주시고 회개하면 용서하시지만,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육체의 일을 행해서 믿음의 1단계로 떨어지면 하나님과 완전히 담이 됩니다. 진리를 알면서 죄를 짓고 현저히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죄인 줄 알면서 짐짓 죄를 지어가니까 하나님이 외면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3단계 중에서 60퍼센트 이상 곧 믿음의 반석에 서면 굳이 어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스스로 알지 못해서 불순종할지는 몰라도, 알면서 불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자기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는 경우가 있지요. 이것이 바로 셋째 단계의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지 못해서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영의 문턱에 머무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으로 들어갔는지 분별하려고 하면 첫째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사랑장, 팔복, 선의 4단계 설교를 잘 들어보고 점검해서 걸릴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으로는 첫째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받은 기 속에 깊이 감춰져 있는 기질적인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 둘째 성장하면서 만든 성격의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 셋째 미세한 비진리를 버리지 못해서 순간순간 스치는 육신의 생각이 있다고 했습니다. 넷째로는 환경에서 오는 충만함에 가려져 있는 육신의 생각이 있는데 과연 어떤 것일까요?

2. 환경에서 오는 충만함에 가려져 있는 육신의 생각

어떤 사람은 아직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도 영육 간에 좋은 환경 속에 있다 보니 항상 영의 생각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 제단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가 늘 넘칩니다. 성경에만 있을 법한 기사와 표적, 권능 등 영적인 체험도 할 수 있고 각종 성령의 은사를 체험할 수도 있지요. 성령 충만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 영적인 말씀이 풍성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 제단을 사모하는 분들이 많이 다녀가시지요. 이제 곧 세계에서 가장 큰 성전 건축에 착수하게 됩니다. 이런 제단에서 신앙생활 하며 항상 지킴 받고 때를 따라 축복도 받기 때문에 충만하고 행복합니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좋아 보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충만한 것은 좋으나 문제는 정작 중요한 일, 곧 마음 밭 개간에는 소홀하다는 것입니다.

외부 환경에서 비롯되는 충만함으로 순간순간 떠오르는 육신의 생각을 덮어 버려서 자신이 늘 영의 생각을 한다고 착각하지요.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그친다면 욥과 같은 모습을 보일 사람이 있습니다. 욥은 자기 마음의 악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와 부와 건강 등 모든 것을 잃어버리자 그때서야 마음의 악이 나왔지요.

욥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열심히 구제했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열심히 행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제사도 잘 드리고 번제도 잘 드렸지요. 잔치를 해도 자녀들이 혹여 범죄했을까 두려워서 자녀들 대신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육으로는 그만큼 완벽해서 하나님이 동방의 제일 부자로 축복하셨지요. 그러나 그런 축복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마음에 할례해서 영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어야만이 온전한 것입니다. 이건 허물 자가 없지요. 하나님이 그 영적인 믿음을 보시고 주신 축복이기 때문에 원수 마귀가 허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송사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허물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받은 축복이어야 참 축복입니다.

이 제단은 많은 연단을 거쳐서 반석에 서 있는 것이라 어느 누구도 허물 수 없습니다. 악한 자들이 허물려고 했고 방송과 언론이 했고, 총동원되어서 했지만 이 제단은 말씀의 반석 위에 서 있는 제단이기 때문에 허물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10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현재는 전 세계에 말씀과 권능으로 인정받는 제단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영혼, 아직도 세상 사랑하고 끊지 못한 영혼, 아직도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만약 주님이 오늘 오신다면 구원도 못 받고 7년 환난에 떨어질 테니 이 얼마나 불쌍한 영혼들입니까.

우리 신앙을 더듬어봐야 됩니다. 우리 젊은이들도 신앙을 더듬어봐야 됩니다. 욥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악창이 나니까 악이 발동되지 않습니까? 그 악이 얼마나 많이 발동됐는지 욥기를 보시면 잘 나오지요. 마음의 할례하지 않았다는 증거이지요. 마음의 할례해서 그런 악을 버렸다면 안 나올 것이고 사단이 송사도 못했을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등에 업혀갈 때는 든든하고 마냥 행복합니다. 그러나 혼자 땅을 디뎌서 걸어보면 자신이 어리고 연약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믿음의 분량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지켜 주실 때는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진리로 일궈졌는지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도 하고 육체의 일도 범하지 않으니 믿음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어떤 연단이 오면 충만함이 사라져 버리지요. 마음에 이룬 진리의 분량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겉만 충만한 신앙생활이 돼서는 안 됩니다. 깊은 마음까지 할례해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나와야지요. 물론 믿음의 반석에 선 사람은 설령 어떤 연단이 온다고 해도 마음의 기쁨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심 속에서 나오는 온전한 충만함, 어떤 상황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충만함을 이루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 수가 있지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마음을 할례하여 성결을 이루는 것입니다.

3. 마음의 할례의 중요성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면서 익히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는데 과연 이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저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초신자 때부터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만 흘러넘쳤습니다. 부흥성회를 통해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알고 황홀했지요. 내 죄를 대속해 주신 구세주가 있다고 하는 것, 이분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 이것을 안 다음에는 너무 황홀했습니다. 신앙생활이 즐겁고 행복했어요.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아 죄 사함을 받지 못했다면 지옥 가는데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이제 죄 버리고 천국 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지요. 죄 버리는 것이 힘들지도 않았고 성경 열심히 읽고 버리라는 것 버리고 하지 말라는 것 하지 않고 하라는 것 하고 지키라는 것 지키면서 너무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할례를 받아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피곤하지도 않고 지칠 줄도 모릅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교회 사랑하고, 목자 사랑하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금식하고 철야하며 늘 교회를 위해서, 담임 목사님과 일꾼들을 위해서, 교회 건축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신앙생활이 시작되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지켜 행하는 만큼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나라의 법이나 교통법규도 알아야 지킬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도 듣고 배워야 지켜 행할 수 있지요.

그런데 죄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죄를 짓고 있다면 어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제가 3주간 산기도를 다녀왔는데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주신 축복이 있어요. 그동안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다시 범죄하지 않도록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또 다시 죄를 짓는다면 예전에 회개한 것이 거짓말이 되지요.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해도 믿기 어렵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살인을 해서 죄의 대가를 치렀다고 합시다. 그런데 또 다시 살인을 했다면 “예전에 살인한 자라 역시 또 살인죄를 범하는구나! 저런 사람은 어쩔 수 없어! 변화되지 않아!” 하면서 죄가 가중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회개했다면 다시는 죄짓지 않아야 죄가 사해진 것이지요. 우리 젊은이들도, 성도님들도 꼭 명심해서 빨리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사망에 이르는 육체의 일 끊어 버리고 더 이상 미혹 받지도 말고 미혹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증거하겠습니다.

2010-09-27 오후 8:33:31 Posted
2010-10-09 오전 1:12:2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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