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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8)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 8:12-16 등록일자 2010.08.15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싶어도 밝히 들을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성령의 음성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는 만큼 사단의 음성을 듣게 되므로 자신이 어떤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발견하여 깨뜨려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육신의 생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육신의 생각들 중 가장 초보적인 단계이지요. 이 육신의 생각들은 주로 세상 지식과 이론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육신의 생각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지요. 교회에는 출석하지만 아직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도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자를 통해 복음을 전하셔서 각 사람의 생각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 세상 지식이 고상하고, 주를 아는 지식 곧 복음이 미련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도하는 여러분을 보고 ‘어리석다, 거짓말한다’ 생각하기도 하지요. 복음이 자신이 아는 지식이나 이론에 비춰 보면 도무지 맞지 않기 때문에 사실을 사실로 믿지 못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전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저의 누님이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는 동생이 안쓰러워서 종종 저에게 전도를 하셨습니다. 교회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신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러면 저는 병들어 있으면서도 “우주선 타고 달나라 가는 세상에 하나님이 어디 있다고 그러십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보여 주세요”라고 했지요. 그러다가 누님의 간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해서 길 안내에 나섰다가 현신애 권사님 집회에 가게 되었지요. 그날 이후로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신론자였던 제가 180도 바뀌어서 하나님을 전하는 데 앞장서는 전도자가 되었지요. 교회에 가서 무릎을 꿇는 순간 7년간 저를 괴롭히던 모든 질병을 하나님께서 다 깨끗하게 고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을 하나둘 배우면서 ‘나에게 지식이 있다는 생각, 교만 때문에 하마터면 영원한 사망으로 갈 뻔했구나’ 생각하니 소름이 끼칠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참으로 아찔했지요. 제가 지금까지 이 권능의 사역을 멈추지 않고 이뤄 온 이유는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4절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말씀한 대로 영에 속한 병기 곧 성령의 권능만이 사람의 지식과 이론, 생각의 틀을 깨뜨리는 강력한 도구임을 깨달았지요. 이 믿음대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성경의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들을 보여줄 때 사람들의 생각이 깨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 지식과 이론으로 단단히 무장된 사람들도 깨어지고 변화되는 것을 목도했지요.

우리 성도님들은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도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해 주변에서 쏟아져 나오는 잠자리 떼를 보면서 영의 공간을 느끼셨고, 친근한 잠자리를 보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수련회 기간은 일 년 중에 가장 더운 시기인데도 얼마나 시원하게 일기를 조절해 주시는지요? 또 수련회 때마다 구름과 무지개, 별의 이동 등 각종 기사로 충만함을 입혀 주십니다. 말씀을 듣다가 또는 기도하다가 치료의 역사를 체험하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은 분들도 계십니다. 만약 이런 역사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저 멀리 해외에서 많은 성도들이 수련회에 참석할 이유가 없지요.

초신자들도 수련회에 참석하면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고 믿음을 갖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의와 틀이 깨지고 믿음이 성장하지요. 여러분 중에도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눈앞에 보여 달라’고 했던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이런 분이라 해도 질병, 가난, 가족 문제 등 막상 인생의 문제 앞에 서니 너무나 막막했고 세상 지식은 무용지물일 뿐임을 느끼셨기에 하나님을 찾아오셨고 하나님을 만나신 것이 아닙니까? 이처럼 심령이 가난해졌을 때 마음의 문을 열면 성령께서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그 후로 늘 함께하시며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지요.

인생의 갖가지 문제를 만나기 전에 천지 만물에 담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만 보고도,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만 전해 듣고도 생각의 문, 마음의 문을 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성도님들 모두 이 헛되고 무익한 육신의 생각을 다 깨뜨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 속에 참 지혜를 얻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게 여기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

첫째 단계의 육신의 생각, 곧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면 곧바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첫째 단계의 육신의 생각을 깨뜨렸다는 것은 이제 갓 성령을 내 안에 모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 안에 들어오신 것이지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은 이렇게 성령을 내 안에 모신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육신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사단의 음성을 들어왔습니다. 주님을 영접했다 해도 곧바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거나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대로 행하고 싶지만 육신의 생각 때문에 원하는 대로 행하지 못합니다.

물론 초신자라도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는 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할 수가 있습니다. 처음 주님을 영접하고 통회자복을 하면 마음이 후련하고 기쁘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이때는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성경 말씀대로, 설교 말씀대로 순종하지요. 성령이 충만하여 육신의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도 잘 받고 기도하는 대로 척척 응답도 받습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첫사랑을 잃어버립니다. 성령 충만함을 잃어버리지요. 성령 충만함을 잃으면 다시 육신의 생각을 지배할 수 없는 상태로 돌아가지요. 그래서 자신의 마음에 일궈진 진리만큼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1) 주님을 영접한 직후의 믿음 곧 믿음의 1단계의 경우
믿음의 1단계는 마음에 진리보다 비진리가 많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 영육 간에 복을 주신다는 말씀을 들어도 순종을 잘 못합니다. ‘하루라도 더 일을 해야 더 많이 벌지’ 또는 ‘휴일은 즐기면서 보내야지’ 하면서 주일 성수를 힘든 일로만 생각합니다.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분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어린아이 같은 생각입니까? 다 육신의 생각이지요. 주일을 지킬 때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맛본 사람은 이런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요. 이처럼 믿음의 1단계는 세상에 사는 동안 입력된 지식이 아직 그대로 있는 상태입니다. 아직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도 적지요.

2) 믿음의 2단계의 경우
믿음의 2단계는 믿음의 1단계에 비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힘쓰고 애쓰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성령의 음성을 좇아 말씀대로 살 때도 있고 사단의 음성을 좇아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에 막혀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 4장 12절에 보면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말씀하지요. 사람의 중심은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므로 남의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지요.

믿음의 2단계는 ‘판단 정죄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 가서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지요. 들리는 말이야 어쩌다가 들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거기서 멈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자세히 들으려고 귀를 기울입니다. ‘정말일까?’ 하고 궁금해 하지요. 그 사람의 행실을 직접 본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해 보지도 않고 남에게 전합니다. 자신의 느낌과 추측까지 보태기도 하지요.

이렇게 행하고는 ‘내가 판단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바탕으로 분별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은 육신의 생각에 가려져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안에 악이 있으니 남도 악하게 보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또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상대를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지요.

마음에 악이 없는 선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선하게 봅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하면 그대로 믿으려고 하지 않지요.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육의 부모만 해도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들으면 대부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럴 리가 없어. 우리 아이가 얼마나 착한데’ 하고 선하게 생각하려고 하지요.

무엇보다도 판단 정죄는 교만이라는 비진리에서 비롯됨을 알아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남을 함부로 판단 정죄하지를 않습니다. 중심에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두려워서라도 감히 판단 정죄하지 못하지요. 또 어떤 분들은 설교를 들으면서 판단 정죄합니다.

‘저 말씀은 나 들으라고 하시는구나’ 하고 판단하여 자신을 책망하고 무안을 준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지요. 제가 왜 성도에게 감정을 품고 또 누구를 지목해서 무안을 주고 그리하겠습니까? 순전히 자기 육신의 생각 속에서 서운함을 갖는 것이지요. 어떤 분들은 ‘저 이야기는 누구 이야기이다’ 하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엉뚱한 사람을 대입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도 하지요.

이 모든 일들이 다 육신의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작은 일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육신의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고도 자신의 악을 전혀 깨닫지 못하니 안타깝지요. 로마서 8장 8절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는 만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발견하는 즉시 신속하게 깨뜨려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010-08-16 오후 9:30:10 Posted
2010-08-29 오전 10:30:3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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