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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7)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 8:12-16 등록일자 2010.08.08
지난 시간에는 성령의 음성과 사단의 음성이 어떻게 사람을 주관하는지 설명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 깨뜨려야 할 가장 초보적인 육신의 생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의 분량에 따라 떠오르는 육신의 생각이 다르다

마음에 비진리가 있으면 무엇을 보고 들을 때 먼저 머리에서 육신의 생각이 떠오릅니다. 성령이 마음에 음성을 들려주셔도 머리에서 이 육신의 생각이 먼저 떠올라서 성령의 음성을 차단해 버리지요. 이렇게 육신의 생각을 하는 것은 원수 마귀 사단에게 대문을 열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사단의 음성이 우리 마음에 침투하도록 문을 열어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믿음의 분량에 따라 떠오르는 육신의 생각도 다릅니다.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마음에 일군 진리의 분량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사과에 비유해 보면 믿음의 분량은 사과의 크기에, 마음에 일궈진 진리의 분량은 사과의 과육 곧 속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진리가 많이 일궈진 만큼 육신의 생각도 적고 그 농도도 흐리지요.

물론 믿음의 단계처럼 육신의 생각을 5단계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살아오는 동안 입력시킨 비진리의 지식이 각기 다릅니다. 또 믿음은 어느 정도 성장했는데도 유달리 깨지지 않는 육신의 생각이 있을 수도 있지요. 어떤 사람은 미움의 뿌리가 깊어서 판단 정죄의 생각이 잘 벗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초신자인데도 미움이 별로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선하게 바라보지요.

이렇게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육신의 생각은 믿음의 분량에 따라 어느 정도 단계가 나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육신의 생각들 중 아주 초보적인 단계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육신의 생각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물론 교회는 나오지만 아직 구원받을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지장이 되는 육신의 생각은 반드시 깨뜨려 없애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버리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힘들고 절대로 영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육신의 생각들은 대부분 세상 지식과 이론 등에서 비롯됩니다.

2.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들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했습니다. 왜 모든 이론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라고 말씀하실까요? 세상 이론이나 지식, 인간적인 지혜가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이 그만큼 많이 동원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평생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온 사람을 전도하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합니까? 복음을 단번에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지금까지 입력시킨 세상 지식이나 이론에서 나오는 생각이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각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셔서 생각의 문을 두드리신다고 했지요? 즉 전도자를 통해 복음을 듣게 하십니다. 이때 선한 사람들은 생각의 문을 엽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결국 마음 문을 열어 주님을 마음에 영접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부인합니다. 세상 지식과 이론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이 주님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생각의 문을 주님께 열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원수 마귀 사단에게 열어 주지요.

성경은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의 몸에서 나셨지요. 그런데 세상 지식에 따르면 생명은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됩니다. 이 세상 지식이 입력되어 있는 사람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가 어떻게 잉태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하는 의심의 생각이 듭니다. 사단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이런 생각을 물고 늘어집니다. 육신의 생각을 부추기지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의문을 가진 정도였다면 점점 ‘거짓말이다. 황당한 일이다’ 이런 판단, 정죄로 발전하지요. 그 결과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어떻게 믿겠습니까? 부활에 대해 전하면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하고 믿지 않습니다.

또 성경은 분명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무(無) 상태에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만물의 기원을 밝히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또 히브리서에는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 보이지 않는 무에서 눈에 보이는 우주 만물 모든 걸 창조하셨다고 나오지요. 그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믿습니다. ‘천지창조’라는 실제 사건을 하나의 신화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지요. 자신이 배운 이 세상의 지식이나 이론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근대에 들어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이 과학을 맹신합니다. 과학 이론이 그래도 객관적이고 신빙성 있다고 생각하지요. 물론 과학 지식 중에는 실험을 거쳐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밝혀낸 참 지식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밝혀낸 것들도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다 밝혀내는 거고요.

그런데 이런 지식들이 1차원 곧 이 육의 세상에서는 참일 수 있으나 그 이상의 차원 곧 영의 세계에서는 참이 아닌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이 참이라고 믿는 지식이 진정 참이라 해도 그 지식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육신의 생각을 낳을 수가 있지요.

예를 들어 여호수아 10장에 보면 해와 달이 같은 위치에 일정 시간 동안 머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 지식에 따르면 해와 달은 멈출 수 없습니다. 만약 멈춘다면 지구는 엄청난 타격을 받지요. 그런데 영의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이 육의 공간을 영의 공간으로 덧입히면 지구에 어떤 충격도 주지 않고 해와 달을 멈추게 할 수 있지요.

우리 성도님들은 ‘공간과 차원’ 설교를 통해 성경의 기사와 표적, 기이한 일, 희한한 능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배우셨습니다. 이 육의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영의 공간에서는 가능할 수 있음을 말씀드렸지요. 해와 달이 멈추면 지구에 엄청난 타격을 준다는 이론은 참입니다. 그러나 이런 지식과 이론을 바탕으로 성경에 기록된 기사를 부인한다면 이 지식은 무익한 지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망에 이르는 육신의 생각을 낳기 때문이지요.

3. 모든 이론과 지식,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려야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기 때문에 이전에 쌓은 세상 지식과 이론을 오히려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고백한 대로이지요.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은 진심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도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 많은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합니다. 이 세상 지식이 고상하고 주를 아는 지식, 곧 복음이 미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했습니다. 여기서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 말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세상 사람이 보기에 미련해 보인다는 뜻이지요.

여러분은 가족 또는 이웃에게 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이신지, 또 천국과 지옥에 대해 전하실 것입니다. 또 “우리 교회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권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암, 에이즈 등 불치의 병이 나았습니다.” 하고 전하실 것이고요. 그러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놀라워하며 전한 그대로 믿고 교회에 나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는 아니지요.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반신반의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단박에 부정해 버립니다. 전도하는 여러분을 어리석게 여기기도 하고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지요. 자신의 지식과 자신이 아는 이론에 비춰 보면 도무지 맞지 않기 때문에 사실을 사실로 믿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상대의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줘야 전도가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영으로 못 들어가고 있는가, 영으로 들어가면 증거들이 따르는 것인데 내가 무엇이 걸림이 돼서, 무엇을 아직도 버리지 못해서 영으로 못 들어가고 있는가’ 이렇게 고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도 발견하는 것이 어려울 것 하나도 없지요.

내 육신의 생각을 검토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이 정말 나를 미워하고 괴롭힙니다. 그러면 내 생각은 어떻게 동원이 되는지 살펴보지요.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며 오히려 그를 위해서 축복 기도해 주고, 성경 말씀대로 이렇게 하는가’ 아니면 ‘저 사람은 가만히 있는 나를 괴롭히니까 너무 싫다’ 하시는지요?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는데 사랑이 안 간다면 아직도 악이 많은 것이겠지요.

예를 들어 아직도 생각 속에, TV에 나오는 안 좋은 것들이 보고 싶다면 ‘아직도 내가 육을 못 버리는 게 있구나’ 또한 단에서 예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보고 음욕이나 간음이 틈탄다면 ‘내 안에 그런 것들이 있으니까 육신의 생각이 동원됐다’는 말이지요. 이런 것을 버렸을 때 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비진리가 있는 이상은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의 종이 설교 준비한다면 ‘기도하고 성령의 주관을 받아서 서론, 본론, 결론 이렇게 해야겠다’ 하는 것이 영의 생각이지요. 그런데 육신의 생각은 ‘내가 지난번 설교에 간증해서 이제 간증할 것도 없고, 은혜는 끼쳐야 되겠고 성도님들의 사랑과 인정도 받아야 되겠는데 이를 어찌하나’ 자꾸 육신의 생각이 틈타다 보니까 항상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지요. 과감하게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께 의존하고 어찌하든 기도로 준비하려고 하면 처음은 어려울지 몰라도 한 번, 두 번, 세 번 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평안과 축복의 길을 밝히 보여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보화인 ‘천국’을 얻는 길을 알려 주지요. 잠시 잠깐 후면 쓸모없어질 세상 지식이나 육신의 생각을 낳아 사망으로 인도하는 헛된 지식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만이 참임을 깨달아 온전히 믿고 순종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8-09 오후 10:38:24 Posted
2010-08-20 오전 11:49:36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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