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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 8:12-16 등록일자 2010.08.01
지난 시간에는 성령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하기 위해서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를 채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음 안에 비진리가 있는 만큼 육신의 생각이 떠올라서 성령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없고 육체의 소욕이 발동되어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음성과 사단의 음성이 각각 어떻게 사람을 주관하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사단과 성령이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는 방식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성전 삼아 마음 안에 거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말씀한 대로이지요. 그래서 성령은 마음 안의 진리를 주관하십니다.

반면에 사단은 사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밖에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말씀한 대로 사단은 공중에서 역사하지요. 마치 전파를 보내듯이 공중에 사단의 마음과 능력을 흩뿌려 놓습니다.

마음 안의 비진리는 안테나처럼 이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입니다. 비진리에서 비롯되는 육신의 생각을 통해 받아들이지요. 육신의 생각은 기억 장치에 입력된 지식 중에서 비진리의 지식이 떠오르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단은 이 육신의 생각을 통해 사단의 음성을 들려주지요.

사단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생각’은 대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안방이라고 할 때 이 안방에 들어가려면 먼저는 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대문을 통과해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안방에도 들어갈 수 있지요. 이 대문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의 생각’입니다. 안방은 바로 우리 ‘마음’에 비유할 수 있고요. 사단은 이 대문 밖에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서성이는 강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사람 마음에 자신의 음성을 침투시켜 그 마음을 자신의 뜻대로 주관하려고 항상 노리고 있지요. 사람이 육신의 생각을 하는 것은 강도에게 자기 집 대문을 활짝 열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육신의 생각을 해서 대문을 열어 주면 사단은 ‘이때다’ 하고 어찌하든 생각의 문을 통해 마음으로 침투하려고 합니다.

반면에 성령은 외부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항상 좌정해 계십니다. 사단이 집 밖에 있다면 성령님은 안방에 계신 것이지요. 마음 안에서 그 사람 마음에 일궈진 진리를 활용해서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사단처럼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느라 대문 곧 생각의 문을 통과하실 필요가 없지요. 마음에서 곧바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혹시 이 설명을 들으시고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과 혼동하면 안 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오시기 전에 먼저 생각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님은 전도자를 통해 ‘구원의 도’와 ‘내세’에 대해 알려 주시며 각 사람의 생각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이 제단의 경우에는 사람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를 함께 보여 주지요. 이때 생각의 문을 여는 사람들은 ‘십자가 사건이 참인가? 하나님이 진정 살아 계신가? 천국이 있을까?’ 등등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다가 복음을 긍정하고 마음 문을 열면 주님께서 마음 안에 들어오십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주님과 하나이신 성령께서 마음에 임하십니다. 이렇게 마음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은 우리 마음 안에 늘 함께 거하십니다. 더 이상 생각의 문을 통해 들어오실 필요가 없지요.

2. 사람이 보고 들은 것이 전달되는 경로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사단이 주관하는 육신의 생각은 머리에서 나오고 성령의 음성은 마음에서 옵니다. 그러니 언뜻 생각하기에는 사단의 음성보다 성령의 음성을 더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사단은 사람의 외부에서 역사하고 성령은 우리 마음 안에 계시기 때문이지요.

실제로는 마음에 비진리가 있는 한, 육신의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또 비진리가 많을수록 육신의 생각이 더 빨리 떠오르지요. 즉 사단의 음성이 사람에게 더 빨리 전달됩니다. 왜 그런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은 마음과 머리 중 어디로 먼저 전달될까요? 머리로 먼저 전달됩니다. 보는 것은 시신경을 통해, 듣는 것은 청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지요. 뇌는 이 정보들을 바탕으로 생각을 합니다. 마음에 비진리가 있는 사람은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무엇을 보고 들으면 머리의 생각이 먼저 작용합니다. 비진리의 지식이 많이 입력되었다면 생각 중에서도 육신의 생각이 주로 떠오르지요.

그러나 비진리를 다 버린 진리의 사람은 무엇을 보고 들으면 그것이 생각으로 즉각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마음에 전달됩니다. 물론 본 것이 시신경을 통해, 들은 것이 청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는 경로는 비진리의 사람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에 즉 영이 혼을 지배하기 때문에 생각을 해도 마음에서 울리는 성령의 음성에 따라 생각합니다. 보고 들은 어떤 정보가 머리에서 즉시 생각으로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거쳐서 재생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의 주관에 따라 영에 속한 진리의 생각만 떠오릅니다.

3. 비진리와 진리가 함께 있는 경우

그렇다면 성령을 받아 영이 살아나기는 했는데 아직 마음에 비진리가 있으면 어떨까요? 무엇을 보고 들었을 때 성령께서는 마음을 주관하시지만 비진리가 있으면 그 주관을 받기에 앞서 육신의 생각을 떠올리기가 쉽지요. 육신의 생각이 먼저 떠오르면서 성령의 음성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안목의 정욕이 발동하는 과정을 보면 이런 원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세상 풍조를 따라 아름답게 치장한 사람을 보자 ‘참 아름답다, 멋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때 성령은 “이 세상의 것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고 음성을 들려주시지요. 그러나 사단이 육신의 생각을 계속 부추기면 이런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마음의 죄성까지 요동하지요. ‘저렇게 되고 싶다’ 또는 ‘저런 것을 취하고 싶다’ 이런 정욕이 마음에서 발동합니다.

다른 예를 들어 보면, 여러분이 공원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젊은 남녀가 벤치에 다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지요.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다시 보니 낯익은 얼굴들입니다. 교회에서 본 기억이 나서 순간 멈칫합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렸을 때 여러분 안에 어떤 상상이 일어나십니까? 사람마다 각각일 것입니다. 이런 장면에 대해 어떤 지식과 느낌을 입력시켰느냐에 따라 바라보는 눈이 다르지요. 그 장면을 눈으로 보는 순간 자기 안에 느낌과 함께 입력된 지식이 재생되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도 그렇게 순수하게 바라보지요. 반면에 불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불순하게 바라봅니다. ‘저 둘이 과연 어떤 사이일까?’ 하고 궁금해합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자기가 바르지 않은 행동을 할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상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요. 자기 경험, 자기 지식과 느낌에 대입시켜서 보고 들은 상황을 판단합니다. 자기 안에 나쁜 마음이 있으니 남도 나쁘게 보는 것이지요. 비진리의 지식이 많이 입력되어 있는 만큼 더 악한 생각이 떠오를 것이구요.

마음에 비진리가 없는 사람은 이런 악한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선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지요. 하나님 일로 대화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은혜로운 간증을 나누고 있을 수도 있으니 선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실제는 이런 상황이 아니고 불순한 의도로 만나는 것일 수도 있지요. 만약에 그런 경우라면 마음에 비진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이 정황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어떤 것을 보여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결코 상대를 판단 정죄하는 마음이나 허물을 전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쪽, 선으로 인도하는 쪽으로 마음과 생각이 작용합니다.

마음에서 비진리가 없어지면 머리에서도 비진리의 지식이 지워집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도 없어지지요. 육신의 생각을 떠올리려고 애를 써도 잘 안 됩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더 이상 사단의 주관을 받지 않습니다. 사단이 주관할 근거 자체가 아예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대문 곧 생각의 문을 사단에게는 결코 열어 주지 않기 때문에 사단의 음성이 들어올 수가 없지요. 오직 마음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마음을 주관하십니다. 비진리를 벗고 진리를 채우는 만큼 사단의 음성이 점점 작아집니다. 반면 성령의 음성은 점점 커지지요.

예를 들어 마음의 진리와 비진리가 각각 80퍼센트, 20퍼센트라면 그때는 성령의 음성이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사단의 음성이 들려온다고 해도 무시하고 성령의 음성만 듣게 되지요. 성령의 음성이 훨씬 더 또렷하고 육체의 소욕보다 성령의 소욕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육을 다 버렸다고 해도 그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사단의 음성이 세미하게나마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성령의 음성을 들을 마음이기 때문에 그 희미한 사단의 음성을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지 않지요.

비유를 들면 라디오에서 내가 들으려는 방송과 다른 방송이 함께 들립니다. 내가 들으려는 방송이 훨씬 더 크고 분명하게 들리고 다른 채널의 소리는 아주 작게 들립니다. 스피커에 귀를 갖다 대야지만 간신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세미합니다. 그러면 굳이 그 작은 소리를 들으려고 할까요? 듣지 않지요.

성령의 음성과 사단의 음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단의 음성이 성령의 음성보다 좀 더 크게 들리는 경우에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자 하면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만 들으려고 힘쓰고 애쓰면 들을 수 있지요. 큰 소리와 작은 소리가 함께 들린다 해도 작은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즉 초신자라도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마음으로 열심히 말씀을 행하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진리도 신속하게 버려지지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사모함입니다. 성령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면 또 순종할 마음이라면 성령의 음성이 미세해도 듣게 됩니다. 반면에 진리와 비진리가 50대 50으로 대등해도 사모함이 적고 순종할 마음이 없으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지요.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는 성령의 음성 듣기를 더욱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2010-08-02 오전 9:44:29 Posted
2018-07-28 오전 12:57:5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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