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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 8:12-16 등록일자 2010.07.11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과 인도를 밝히 받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평안과 축복의 길로만 갈 수 있지요. 오늘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 그 외에 영감으로 음성을 듣는 경우에 대해 살펴보고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증거하겠습니다.

1.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성령의 음성을 듣거나 성령의 주관을 받았을 때 우리 편에서도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예배를 드릴 때, 불같이 기도하거나 감동 속에 찬양할 때 이렇게 해야겠다는 주관을 받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또는 A, B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할 때 어떤 길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기 위해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마음에 강하게 오는 쪽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아! 이것이 성령의 주관이구나! 하고 순종하여 행합니다. 아무리 성령께서 음성을 들려 주시고 행할 바를 주관하셔도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먼저 손을 내미셔도 우리 편에서 그 손을 잡지 않으면 인도를 받을 수가 없지요. 또는 순종하다가 중간에 변개해도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에게 어떤 응답받을 제목이 있는데 마음에 이번 다니엘철야를 작정해서 드리면 응답받겠다는 성령의 주관이 옵니다. 그래서 이 주관에 따라 열심히 다니엘철야에 참석합니다. 그런데 작정 기간이 다 차 가는데도 응답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의 주관이 맞나? 그냥 내 생각이었나? 이런저런 생각이 틈탑니다. 여기서 만약 변개해 버린다면 응답을 받을 수가 없지요.
성령은 어떤 음성을 주실까요? 누가복음 18장 1절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한다"는 예수님 말씀을 떠올려 주십니다. 즉 작정한 대로 끝까지 철야기도를 드리도록 주관하시지요. 말씀 무장이 더 잘된 사람이라면 다니엘이 기도한 지 21일째 되던 날 비로소 응답받았다는 성경 말씀을 떠올려 주십니다.
다니엘이 큰 응답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첫날에 이미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응답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던 천사장이 악한 영에게 막혔는데 미가엘 천사장의 도움으로 21일째에야 다니엘에게 응답을 가져왔지요. 이렇게 변개함 없이 주관 받은 대로 온전히 행할 때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변개할 마음은 아닌데 진리가 마음에 잘 무장되지 않아서 도중에 성령의 인도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따라 잘 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생각을 따라 가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성령의 주관을 받아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로 작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건축 헌금 얼마를 작정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팔리지 않던 땅이 매매되어서 그 수입으로 작정 예물을 드리기로 마음먹었지요. 성령의 주관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순종하니 하나님께서 작정한 금액을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또 다른 축복의 길이 열렸습니다. 계산해 보니 그 액수가 전에 땅을 매매한 금액보다 더 컸지요.
그러자 이왕이면 더 많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새로이 축복받은 물질로 작정한 액수보다 더 크게 드리기로 합니다. 전에 땅이 매매된 돈은 우선 개인 사업자금으로 사용하기로 했지요. 이런 경우 작정한 예물을 안 드리려는 마음은 아니지만 분명히 변개한 것입니다.
레위기 27장에 보면 서원 예물을 드리는 법에 대해 나옵니다. 9~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서원물로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 그것을 변개하여 우열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혹 생축으로 생축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며"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드리기로 작정한 생축보다 더 좋은 것이 생겨도 바꾸지 말라고 하십니다. 정 드리고 싶으면 둘 다 드리라는 것이지요. 드리기로 작정한 것은 이미 하나님의 것으로 거룩하게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변함없이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지요. 성령의 음성과 주관에 늘 순종하면 늘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로마서 8장14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신 대로 하나님의 참 자녀라고 할 수 있지요.
내가 성령의 인도를 받았는지는 곧 성령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었는지 그 음성에 그대로 순종했는지는 열매를 보고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반드시 영의 열매가 맺히기 때문입니다.

2. 영감으로 음성을 듣는 경우

이처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 인도를 받는 것 외에도 성령과 교통하는 방법에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영감으로 음성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감으로 듣는 음성은 마음의 소리로 들리는 성령의 음성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러나 마치 소리로 듣는 것처럼 또렷하게 마음에 전달되기 때문에 음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영감의 음성을 통해 주시는 내용은 매우 다양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사야, 에스겔, 호세아 등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계시들이 있습니다. 이 계시들도 바로 성령의 역사 속에 영감으로 음성을 들어 기록한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신 것은 아니고 사람의 외부에서 성신으로 역사하셨지요.
제가 영감 가운데 음성을 들은 체험을 몇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요한복음 16장 13절 후반절에 (성령께서)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신 대로 종종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 주신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1987년에는 우리나라 정치 역사상 큰 의미를 갖는 6.29 선언이 있을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영감으로 구체적인 진행 과정까지 알려 주셨고 미리 교회 주보에 싣도록 주관하셨지요. 주보에 그 내용을 게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려 주신 그대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또 어느 때는 영감으로 다음 주의 헌금 액수를 정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어떤 큰 인물이 교회에 등록할 것을 미리 알려 주신 적도 있었지요. 알려 주신 그대로 반드시 역사되었기 때문에 저는 단에서 선포하거나 주변 일꾼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으려면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따라서 성령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주관과 인도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께서 아무리 음성을 들려 주셔도 들을 준비가 안 돼 있으면 들을 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과 인도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을 진리로 일궈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리 자체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진리를 통해서만 역사하실 수 있지요.
그래서 우리 마음에 있는 진리의 분량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곧 마음을 진리로 일궈서 영적인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지요. 영의 믿음 곧 4단계 이상의 믿음은 마음의 비진리를 다 벗은 믿음입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군 상태이지요. 그래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때로는 1, 2단계에 있는 초신자가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기도 합니다. 믿음의 분량이 적어도 성령이 충만할 때는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성령 충만함을 잃으면 더 이상 밝히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진리로 이루어 영적인 믿음이 계속 성장해야 지속적으로 들을 수가 있지요. 또 마음을 진리로 일군 만큼 더 밝히, 깊게 들을 수가 있구요.
반면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았어도 마음을 진리로 일구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의 음성을 듣고 또 밝히 듣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비진리를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진리로 가득 채워야 하지요.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작업과 마음에 진리를 채우는 작업을 동시에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진리로 채운다는 것은 단지 진리의 지식을 머리에 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구는 것을 말하지요. 예를 들어 누가복음 6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대부분 이 말씀을 들어보셨고 잘 아십니다. 암송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구요.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 원수도 사랑하라는 진리가 마음에 일궈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대로 정말 원수까지도 사랑할 때, 이 진리의 말씀이 마음에 임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에는 이 진리가 얼마나 임했는지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세게 밀치고 아무 말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사람마다 이에 대한 반응이 다를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분이 순간 균형을 잃었나? 다급한 일이 있나보다. 하고 이해합니다. 불쾌한 마음이 조금도 없지요. 더 나아가 다치지는 않았나? 하고 상대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밀치는 순간 짜증이 확 나면서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지? 또는 어떻게 사과도 안하고 그냥 가나? 이런 생각들이 스칩니다. 이렇게 찰나에 떠오르는 생각은 거짓으로 꾸밀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지요. 원수도 사랑하라는 진리가 마음에 임한 사람은 이런 급작스런 상황에 처해도 마음이 평온하고 선한 생각만 떠오릅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음에 원수도 사랑하라는 진리가 일궈지지 않은 만큼 사랑의 반대, 곧 미움이나 혈기가 동합니다. 마치 구정물이 가득 들어 있는 양동이를 흔들면 구정물이 넘치는 것처럼 마음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그대로 나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얼마나 진리로 일궈졌는지 점검이 되십니까? 마음에서 비진리를 벗고 진리로 채우려면 명백한 비진리를 벗은 후에는 양심의 악, 본성 속의 악 등 더 깊은 차원의 비진리를 버려 나가야 합니다.
그러니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는 능력 있는 일꾼이 되기를 사모한다면 지체할 시간이 없지요. 아직도 미움, 시기, 질투, 거짓 등 명백한 비진리조차 마음에서 버리지 않고 노력만 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지는 않으십니까? 다음 시간에는 마음의 진리와 비진리가 성령의 음성을 들음에 있어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2010-07-12 오후 11:05:15 Posted
2010-07-27 오전 10:22:0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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