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배

설교 >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

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다음요즘 메일보내기 바로가기복사
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 8:12-16 등록일자 2010.06.06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의 자취와 가르침에 대해 기록한 사복음서 외에도 사도들이 기록한 사도행전이나 서신서, 계시록이 있어 하나님의 뜻을 더 밝히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친 제자도 아닌데 27권의 신약 성경 중 14권을 기록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백한 대로 성령과 교통하며 기록한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부터 행할 바, 말할 바를 지시받아 행했지요. 오늘부터 몇 주간에 걸쳐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 인도받는 법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교통해야

교통한다는 말에는 소식이나 정보를 주고받다, 관계를 맺다, 사귀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와 자녀들이 교통하는 것은 당연하듯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 또한 당연하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교통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구요. 물론 교통하는 방식에 따라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경우도 있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한입니다.
로마서 8장 14~15절에도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했지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면 전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기는 했는데 그 후로 아버지와 교류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만나기 전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지요.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으면 옛 습관대로 범사에 자기 생각을 좇습니다. 여전히 자기 한계 안에서 살게 되지요. 그러면 전보다 나은 것이 없지 않습니까? 사업을 해도 자기 노하우와 능력 안에서 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큰 이윤을 남기기는 어렵지요. 또 사람의 능력 밖의 일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일을 꿰뚫어 볼 수 없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재앙을 만나거나 악한 사람의 궤계에 속아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또 요즘처럼 전반적으로 경기가 어려울 때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을 더 많이 만나게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 안에서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대로 행하기만 하면 설령 재앙이 온다 해도 능히 피할 수 있습니다. 또 축복받는 길을 알아 그 길로만 갈 수 있지요.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은 일터뿐 아니라 가정도 항상 평안합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일을 이룰 때도 그렇지만 하나님 나라를 이룰 때에는 더더구나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일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이 내는 열매와 교통하지 못하는 사람이 내는 열매는 하늘과 땅 차이지요.
예를 들어 성도의 가정을 심방할 때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은 그 가정에 합당한 말씀을 주관받습니다. 주관받은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반면에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에 맞춰 말씀을 생각해냅니다. 이 집은 부부 사이가 안 좋으니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전해야겠구나 하고 자기 생각 속에서 말씀을 전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전한다고 해서 서로 미워하던 부부가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근본의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가정에 정말 필요한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만이 정확히 아시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통하여 그 말씀을 주관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주관받은 말씀을 증거하면 말씀에 권세가 따릅니다. 영혼들에게 통회자복의 은혜가 임하고 심령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지요. 심령이 변화되어 영혼이 잘되어 가면 축복도 임합니다. 이렇게 영으로 심방해야 맡은 양 떼가 튼튼해지고 맡은 교구나 선교회가 부흥합니다. 물론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는 사람도 양 떼를 좋은 말로 위로하고 육으로 잘해 주어서 영혼을 갈무리하기도 합니다. 잠시 부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육으로 갈무리한 영혼들은 어떤 시험을 당하면 마치 비바람에 썩은 과일이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져나갑니다. 혹은 자신에게 잘해 주던 일꾼이 다른 분야로 옮겨가면 신앙이 미지근해집니다. 이는 참 믿음을 심어 주지 않았다는 증거이지요. 이처럼 육적으로 사명을 감당하면 하나님 앞에서 아무 상급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자녀라면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이나 일꾼이라면 반드시 하나님과 교통해야 하지요.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하구요.

2. 하나님과 교통한 믿음의 선진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다윗은 항상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사무엘하 5장 18~25절에는 다윗이 하나님과 교통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 차도록 몰려왔습니다. 이때 다윗은 무작정 나가 싸운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고 답하셨지요.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올라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쳤습니다. 이전에도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었습니다. 또 다양한 전쟁 경험을 갖고 있었지요. 더구나 이제는 군대장관도 아니고 유다 한 지파의 머리도 아닌 온 이스라엘 족속의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얼마든지 당당하게 전장으로 나가 블레셋 군대와 맞서 싸울 수 있지요. 그런데도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여쭈었지요. 그 결과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또다시 블레셋 군대가 같은 장소로 몰려왔습니다. 이전과 같은 장소이고 싸워 본 지 얼마 안 된 상대이니 그냥 출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번에도 하나님께 여쭙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하라 그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고 세세하게 전술을 일러 주셨지요. 이는 정면으로 맞서 올라가지 말고 적군의 뒤편에 매복했다가 기습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여쭙고 그대로 순종한 다윗은 이번에도 큰 승리를 거두었지요.
다윗은 이 전투에서만 이렇게 행한 것이 아니라 범사에 "이 일은 어떻게 될까요? 이번에는 제가 어떻게 할까요?" 하고 하나님께 여쭙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렇게 행할 때마다 형통한 길로 갈 수 있었구요. 그래서 설령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에 거할지라도 다윗에게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범사에 하나님과 교통하여 하나님께 인도받으면 무슨 일이든지 형통합니다. 성경 속 믿음의 선진들에게만 가능한 일이 결코 아니지요. 하나님은 그 어느 책략가보다 지혜로우시고 이 세상 어떤 권세자보다 능력이 크십니다. 또한 섬세하시고 자상하시지요. 범사에 이런 하나님께 인도받기를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중심으로 사모하고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3.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

1)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 천사의 음성을 듣는 경우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나 모세, 사무엘 선지자가 자신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답하는 장면들이 나오지요. 또한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하는 체험을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을 기록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표현했지요.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할 때는 직접 천사를 만나 천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밖에도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영의 음성을 듣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저에게도 몇 차례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심을 다해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려 주실 때는 "누가복음 22장 44절을 보라"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음성이 얼마나 청아하고 우렁찼는지요. 많은 물소리 즉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처럼 우렁차고 아주 맑은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렸습니다. 아! 저기서 들려온다 하고 하늘의 어느 한곳을 콕 짚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온 공간, 온 하늘에서 울렸지요.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실 때도 친히 맑고 우렁찬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 천사의 음성은, 성령의 음성과 어떻게 다를까요? 이런 음성들은 외부로부터 들려옵니다. 반면에 성령의 음성은 각 사람의 마음 안에서 들려오지요. 만일 여러분이 어떤 음성을 들었다면 그것을 잘 분별하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악한 영의 역사를 받으면서 하나님 또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이렇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분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혹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지요.

2)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경우
하나님과 교통하는 경우 중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 천사의 음성 등을 듣는 것은 성도들이 일반적으로 체험하는 경우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합당한 사람에게 때를 좇아 들려주시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아무나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통하시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시는 방법은 바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성령은 우리 마음을 성전 삼아 마음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음성도 우리 마음 안에서 들려오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처럼 어떤 또렷한 소리로 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렁차고 청아한 말소리가 들린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정확하게 들을 수만 있다면 성령의 음성처럼 섬세하고 확실한 음성도 없습니다. 다음 시간부터 성령의 음성에 대해, 성령의 주관과 인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2010-06-07 오후 10:55:09 Posted
2010-07-05 오후 1:25:13 Updated

이전글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2)
검색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