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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일서 강해(4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일 4:14-18 등록일자 2014.06.2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일서 강해 마흔 세 번째 시간입니다.

본문 14절에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얼마나 확실한 사실인지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몸을 갖고 계셨지요. 배고픔과 목마름, 피곤함과 추위와 더위, 슬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겪으셨습니다. 그렇게 33년을 사신 후에 결국 십자가에 달려서 죽임을 당하셨고요.

제자들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까지 직접 보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한 것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의 부강한 나라를 세우고 이 세상에서 영광을 누릴 왕을 기대했지요. 당시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이방 나라들의 압제 하에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가 오시면 다윗처럼 강력한 왕이 되어 이방인의 압제를 물리쳐 주고 유대 민족을 영화롭게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성령께서 제자들을 깨우쳐 주심으로 메시아의 참된 의미를 알았습니다. 비밀한 십자가의 도를 깨우쳤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세주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심을 알았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죽으셨기에 이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죄를 사함받고 구원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십자가의 섭리를 깨달은 후에 생명 다해 영혼들에게 전파했지요.

이어지는 15절에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하자 놀랄만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는 폭발적으로 성령이 역사하시니 한 번에 3천 명 혹은 5천 명씩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설교 한 번에 큰 교회가 하나씩 생길 정도로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살았고,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았지만, 복음을 전해들은 성도들 중에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우리도 2천 년 전의 예수님을 뵈올 수는 없지요.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을 확증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 보고 들은 것처럼 뜨겁게 전파할 수도 있지요.

이처럼 성도들이 확신 가운데 복음을 전할 때 또 다른 누군가가 마음 문을 열어 주를 영접하게 되고, 그러면 그도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을 때 원수 마귀 사단은 자기 무덤을 판 것이 너무나 분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이기만 하면 자기들의 승리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스스로 망하는 길이었지요.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사망 권세 아래 묶어둘 수 없기 때문에 부활하시는 것을 그냥 지켜 보아야 했습니다. 또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죽으셔서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셨기 때문에 자기 권세 아래 있던 영혼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내어 놓아야 했지요.

고전 2:8에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만약 십자가의 사건의 결과를 알았다면 절대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원수 마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이길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즉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거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거나 하는 이런 영계의 비밀을 믿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방해하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육의 사람들의 생각은 사단이 주관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통해 의심을 불어 넣어주고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면 구원의 섭리를 훼방할 수 있을 줄 알았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단의 생각도 아셨고 대비책도 세워놓으셨습니다. 그 대비책이 앞 절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바로 성령이었지요.

사람의 생각으로는 믿을 수가 없는 일도,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성령을 받으면 얼마든지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인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라 시인합니다. 또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버리며 심지어 자기 생명까지 내어놓을 수 있는 온전한 믿음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지요.

본문에서는 이런 자녀들에 대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사실은 단지 입으로만 믿음을 시인한다 해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 16절에 나옵니다.

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는 말은 결국 “독생하신 아들의 생명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 믿는다” 하는 뜻입니다. 이는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 안에 거할 때라야 곧 사랑을 행할 때라야 우리도 하나님 안에 거한다 할 수 있고, 하나님도 우리 안에 거한다 할 수 있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근본을 이해한다는 말입니다. 그 사랑을 알면 우리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정도를 벗어나고 심히 자기 유익을 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럴 때도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불편해 하거나 상대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나도 주님의 십자가로 사함 받았는데, 나도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귀한 자녀가 되었는데’ 이런 생각이 떠오르므로 상대를 정죄할 수가 없지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저 영혼도 사랑하고 귀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므로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크게 보이고 혹여 부족함이 있다 해도 변화되기를 바라며 기다려 줍니다.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자녀가 될 때 범사에 축복이 임합니다. 영적인 권세가 임하고 어둠이 물러가니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으며 머리 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일 4:7-16까지 비슷한 표현들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그 내용을 여러분이 기억하기 쉽도록 한번 간단하게 요약해 보지요. 하나님은 사랑 자체 이십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크신가 하면 죄인이었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지요.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세주가 되어 주신 것을 전해 들었고,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시인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을 수 있게 하셨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게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주를 시인하고 성령을 받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깨달아 진리를 행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도 온전히 이뤄가는 것이지요. 이것이 지난 여러 시간을 통해 살펴본 요일 4:7-16의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 일서 강해를 들을 때 대부분의 우리 성도님들에게는 그리 어렵게 들리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이미 십자가의 도라든지 다른 말씀들을 통해 배운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도,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도, 또 계명대로 행하는 믿음이 참 믿음이라는 것도 수없이 들어서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일서의 한 말씀 말씀을 들을 때 지식적으로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영적인 깊이가 더해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이 한 구절을 듣는다 해도 사람마다 감동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영으로 일군 각 사람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한 바에 따라 말씀을 이해하는 정도가 다르지요.

요한일서 강해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이 더 깊이 깨달아지고, 여러분 안에도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을 꼭 닮은 참된 자녀들로 속히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06-24 오전 1:09:47 Posted
2014-06-25 오전 9:31:0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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