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배

설교 > 요한일서 강해

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다음요즘 메일보내기 바로가기복사
제목 요한일서 강해(40)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일 4:7-10 등록일자 2012.12.30
오늘 본문 요일 4:7-8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할 때 이 사랑은 영적인 사랑입니다. 영적인 사랑과 육적인 사랑을 분별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 비춰보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육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말로는 온갖 애정표현을 다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오래 참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성내어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영적인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소자라도 무시하지 않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깁니다. 육적인 사랑은 상대와 가깝다 해서 예의에서 벗어난 말이나 행동을 합니다. 자기 유익에 맞춰,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을 주고, 받고 싶어 하지요. 또 뜨겁게 사랑할 때는 뭐든지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랑이 식어지고 변질됩니다. 이렇게 사랑장의 항목에 하나하나 비춰 보면 영적인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혹 세상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변함없이 좋아하기도 합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상대를 위해 큰 희생을 감수하기도 하지요. 그렇다 해도 여전히 그 사랑을 영적인 사랑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의 결과로 상대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상대를 위하는 영적인 사랑은 상대의 영혼이 잘되게 하는 사랑입니다.

이런 영적인 사랑을 하려면 먼저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하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상대방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도록, 영혼이 잘되어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내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영으로 사랑한다면 가족들에게 나를 제일 사랑하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라 하지요. 또 부모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육으로도 정성껏 섬길 뿐 아니라 영으로도 섬길 것입니다. 천국에 함께 가시도록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말로는 사랑한다 하고 열심히 전도하면서, 실제로는 사랑의 섬김은 보이지 않아서 오히려 부모님을 서운하게 한다면 이를 영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섬김도 희생도 없이 자기 유익만 구하면서 상대에게 교회에 같이 나가자 해서는 상대의 마음에 감동이 오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듣기 좋은 말로 설득한다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막 7:9-12에 보면 육과 영을 오해하여 바르지 못하게 행한 사례가 예수님의 말씀 중에 나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한다 하셨지요.

자기 욕심 때문에 부모님을 섬기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핑계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잘 섬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지요. 영적인 사랑에는 마땅한 도리를 좇아 행하는 실질적인 섬김과 희생도 담겨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영적인 사랑을 이루었나 분별하려면 먼저는 사랑장의 항목들을 점검해 보고 더불어 내가 상대의 영혼이 잘되기 원하고 그에게 생명을 주는 사랑을 하는가? 점검해 보면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본문에 보니 이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했습니다. 사랑장의 사랑, 상대의 영혼이 잘되게 하고 참 생명을 주는 영적인 사랑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이 사랑을 줄 수도 없고 이 사랑을 알 수도 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도 참사랑을 할 수가 없지요. 오직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났을 때 그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곧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마음에 진리가 채워지는 만큼 영적인 사랑을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영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났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머리로 알 뿐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지식이 마음 안에 채워진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랑 자체이시기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곧 진리의 지식이 채워진 사람은, 자신도 다른 사람을 사랑을 할 수밖에 없지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했는데 그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느낄 수 있습니까? 종종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와 닿지를 않는다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도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너무나 확실한 표증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 증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지요. 본문 9-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멀리한 죄인들을 살리시려고 흠 없는 독생자의 생명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사랑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건을 통해 최고의 사랑이 나타났지요. 온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그 존귀하신 독생자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거칠고 험한 땅에서 가난한 삶을 사심으로 인생들의 가난을 대속해 주셨고, 참혹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심으로 죄인들을 대속하셨습니다.

화목제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목을 이루기 위해 희생의 제물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구약 시대의 화목제는 어떤 특별한 감사의 제목이 있을 때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을 때,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서원할 때나, 어떤 소원에 응답받고자 서원할 때 드렸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드리든 간에 화목제의 기본 의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담이 없이 화목을 이루면 하나님께서는 진리 안에 살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더하시고 마음의 소원에 응답해 주시지요.

그런데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사함을 위한 제물이 필요합니다. 이 제물이 되어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님이셨지요. 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교통할 수도, 응답받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할 수도 없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심으로 독생자를 희생하여 우리 죄를 사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기에 이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구원도, 응답도 축복도 받을 수 있게 되었지요. (끝)


2013-01-01 오전 4:04:28 Posted
2013-01-03 오후 3:35:49 Updated

이전글 요한일서 강해(41)
다음글 요한일서 강해(39)
검색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