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배

설교 > 요한일서 강해

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다음요즘 메일보내기 바로가기복사
제목 요한일서 강해(30)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일 3:13-14 등록일자 2012.02.26
요한일서강해 서른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요일 3:13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성도들이 직장이나 가정에서 애매히 고난을 받는다 해도 이는 힘들어 하거나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핍박이 오면 기뻐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상급을 받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지요.

마치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끝까지 진리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십니다. 이런 크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신뢰할 때 어떤 연단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지요. 연단을 받는 중에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연단이 끝나고 하나님의 뜻을 깨우칠 때는 눈물로 그 사랑에 감사하게 되지요.

그런데 만약 여러분 자신이 다니엘의 입장에 처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만 하여 연단을 잘 통과한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요.

반면 생명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서운함이 틈타거나 감사하지 못했다면 어떠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사자굴에서 건져주시고 전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 주신 후에 이전에 자신의 온전치 못했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얼마나 민망하고 죄송하겠습니까? “이처럼 축복을 예비하신 사랑의 하나님 앞에 내가 어찌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왜 온전히 신뢰해 드리지 못했을까?” 하면서 뼈저리게 후회가 될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때 우리 주님께서는 천국의 보좌에서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지켜보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도 주님도 스데반이 믿음으로 잘 순교할 줄 아셨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자녀가 순교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얼마나 졸이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지만 그럼에도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 때로는 연단이나 애매한 고난도 허락하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아버지의 마음과 주님의 마음을 늘 기억한다면 아무리 불같은 연단이 온다 해도 정신을 더 바짝 차릴 것입니다. ‘내가 이 연단의 기간을 가장 멋지게 통과하여 나를 기대하고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드리겠다’는 각오로 말입니다.

제가 초신자 때 딱 한 번 너무나 마음 아픈 말을 한 적이 있었지요.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 숱한 질병을 치료받고 구원받은 은혜로 가정에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가난으로 산동네 사글세방을 전전하며 노동일로 하루하루 살아갔지만 매순간 천국같이 행복했지요.

그러던 중 집이 철거될 상황에 처해 보증금도 받지 못하고 집을 구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5만원을 빌려 고생 끝에 간신히 햇볕도 들지 않는 방을 하나 얻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철거장이 날아왔지요. 한 달 안에 비우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보증금 5만 원을 돌려받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적은 액수로 급히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멀리 떨어진 불광동까지 가서 집을 알아보다가 점심도 굶고 저녁도 못 먹은 채 날이 어두워져서 집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지친 마음에 저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 나왔지요 “어찌하여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방 하나 예비해 주지 않으셨는지요?”

그런데 그 직후에 혹시나 하여 집 근처 복덕방에 들렀더니 바로 조금 전에 가까운 곳에 방이 나왔고 다음 날이라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지금 사는 집보다 훨씬 좋은 방에 가게를 열 수 있는 방까지 딸려 있었지요. 보증금은 제가 가진 5만 원이면 된다 했습니다.

이날 제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질병을 치료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 하나님께서 나를 가난하게 하신 것도 아닌데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 원망하는 말을 했는가?”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3일 금식을 드렸지요.

그 후로는 하나님 앞에 결코 서운하실 만한 고백을 한 적이 없습니다. 차라리 생명을 잃을지언정 저에게 좋은 것만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는 아프시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와 다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고 구했다면 당장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큰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시기에, 더 좋은 축복을 허락해 주시지요.

어떤 상황 속에서나 여러분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의 축복과 천국을 이미 주셨음을 결코 잊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일 좋은 것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항상 믿음의 고백, 감사의 고백만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더불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를 핑계로 하여 자기 유익을 구하거나 혹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핍박을 받는다면 이는 주님의 이름으로 받는 핍박도 아니요 상급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학생이 학업을 소홀히 하고 교회에 나와서 교회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가정주부가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교회의 모임에만 나와 있다고 합시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교회도 가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는 주님 때문에 받은 핍박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게으름이나 지혜 없음으로 인해 교회가 좋지 않은 말을 듣게 했으니 상급이 깎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벧전 2:19-20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했습니다.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담대하고 불의와 타협하면 안 되지만, 그런 만큼 더 성실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남보다 더 사랑으로 섬기고 희생해야 하며 남보다 더 부지런하고 더 겸손해야 하지요. 그럴 때라야 사단의 역사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죄를 짓는 것은 아니라 해도 종종 전도를 하면서 지혜롭지 못한 말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람도 있지요. 상대의 믿음의 분량에서는 순종할 수 없는 말씀을 강요하거나 영적으로 너무 깊어서 이해하지 못할 말씀을 전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상대가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해를 하고 마음 문을 닫습니다. 심할 때는 감정이 상해서 악을 발할 수도 있구요.

이처럼, 정녕 주의 이름 때문에 받는 핍박인지, 아니면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자초한 핍박인지 잘 분별하여 지혜롭고 덕스럽게 행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핍박받을 때나 다른 어떤 연단 중에도 슬퍼하거나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시구요.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요한은 요한 일서를 통해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 요일 3:14에도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했지요.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원래 인류는 죄로 인해 사망의 형벌 곧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갈 처지였는데 예수님께서 그 형벌을 대신 받아 주셨지요. 이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곧 주를 믿는 믿음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 5:24에도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셨지요.

그런데 본문에서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했습니다. 곧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때 이 사랑이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갔다는 증거가 된다 했습니다.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하여 결국 구원도 못받을 것을 경고하고 있지요.

어째서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구원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이 처음 성령 받았을 때를 기억해 보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첫사랑이 뜨거운 시기에는 마음에 사랑이 가득 채워집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와 우애하며 예전에 미워하던 사람까지도 예뻐 보이고 상대에게 먼저 웃어줄 수 있지요. 마음에 기쁨이 임하니 표정이 밝아지고 차갑고 딱딱하던 인상이 천사같이 부드러운 인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물론 주님을 영접한 그 순간부터 온전한 사랑을 이룬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은혜가 임한 만큼 사랑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주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직 믿음의 1단계나 2단계에 있을 때는 성령 충만함이 좀 식어지고 은혜가 떨어지면 미운 마음이 동하기도 합니다. 내 생각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밉고 가까이 하기 싫은 마음이 들지요.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짜증도 납니다. 형제가 잘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불편하거나 자신과 비교해서 낙심하기도 하지요.

아직 사랑을 온전히 이루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럴지라도 성령의 역사를 받는 사람은 매일 노력해서 조금씩이라도 변화되며 온전한 사랑을 이루려고 노력을 해내갑니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셨는데,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셨는데 내가 어찌 다른 사람에게 악한 마음을 가질 수 있나’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려고 열심히 기도하지요.

그럴수록 점점 온전한 사랑을 이뤄갑니다. 상대가 내 유익에 맞지 않게 행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지 않는다 해서 성을 내지도 않습니다. 상대에게 부족하고 답답한 면이 있어도 잘 할 때까지 격려하면서 참아줄 수 있지요. 상대가 잘 할 수 있기를, 잘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어줍니다.

그 때까지 내가 희생해야 한다 해도 인내할 수 있구요. 자기가 가진 것을 자랑하지 않고 상대가 가진 것을 투기하지도 않습니다. 교만하거나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고 불의한 것, 악한 것은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가 왜 그런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요.

더 나아가 그렇게 악을 발하는 상대를 진심으로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신 것처럼 원수를 위해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까지도 이룰 수 있지요. 이런 사랑을 이루게 되면 이때는 진리 자체이신 주님께서 여러분 안에 온전히 거한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한다는 말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형제를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한다면 영혼 구원을 위해 힘쓴다는 사실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전도할 것입니다. 또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이 혹시라도 실족하지 않도록 신속하게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하도록 항상 심방하고 기도하지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 종종 이런 불만을 말합니다. “너희는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너희 종교를 강요하느냐? 꼭 기독교만 믿어야 한다고 하니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기분이 상한다” 하지요.

만약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다른 종교를 믿는 분들에게 그 종교를 잘 믿으라고 말해줄 것입니다. 자기 물질과 시간을 들여 전도하지 않아도 되고, 때로는 굳이 핍박을 받아가면서 신앙을 지키지 않아도 되니까 성도들도 너무나 편하고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면, 진리를 안다면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구원의 길이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임을 압니다. 형제가 복음을 듣지 못하여 믿지 못하면 그가 천국에 가지 못하는데 더구나 불못에 떨어질 것을 아는데 어찌 전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찌하든 좋은 음식을 먹여 주고 싶고, 좋은 것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싶어집니다. 사실 별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불난 집 안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어찌하든 소리 질러 깨우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위급한 처지를 보면 집 안에 뛰어 들어가서라도 살리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을 처지에 있다면 어떻게 건져내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또 연약한 성도들을 보면 어찌하든 더 좋은 천국에 이를 수 있게 도와주고 원수 마귀 사단이 미혹하지 못하게 지켜줘야지요. 영육 간에 어떤 문제로 고통받는 것을 볼 때 자신의 일보다 더 간절히 중보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직분도 있고 좋은 천국을 사모하여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영혼 구원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1년이 지나도록 한 영혼도 전도하지 않고 영혼을 돌보는 사명을 사모하지도 않지요. 기관장이나 구역장을 맡아 심방하라 하면 오히려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9:16에 말하기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했습니다. 여러분 안에 영적인 사랑으로 가득하여 사랑하는 많은 영혼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

2012-02-27 오후 10:36:37 Posted
2012-03-05 오전 10:43:43 Updated

이전글 요한일서 강해(31)
다음글 요한일서 강해(29)
검색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