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배

설교 > 요한일서 강해

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다음요즘 메일보내기 바로가기복사
제목 요한일서 강해(2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일 3:13-14 등록일자 2012.02.19
요한일서 강해 스물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요일 3:13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반대되는 세상 사람들 곧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의 조종을 받는 세상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종종 세상 사람들 중에는 이유 없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핍박하여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원수 마귀 사단이 궤계를 부리는 것입니다.

세상이 성도들을 미워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성도들이 의를 행할 때 그 빛으로 인해 자기들의 어둠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성도들을 미워할 때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했지요. 의를 위해 핍박받는 것이 복이 있다 하셨으니 진리를 행하므로 고난당한다 해도 기뻐하고 감사하면 됩니다. 그럴 때 공의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더 큰 축복이 임합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핍박을 받아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선으로만 심어 나가면 결국 가정 복음화의 열매를 맺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핍박을 받아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변함없이 선과 정직과 섬김으로 행하면 모든 핍박은 결국 축복으로 변하지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원수까지도 화목하게 해주십니다. 전에는 여러분을 미워하던 사람들도 결과적으로는 남보다 더 끈끈한 사랑과 신뢰로 맺어지기도 하지요.

물론 어떤 경우는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선하게 대해줘도 그들이 끝까지 돌이키지 않고 성도들을 미워하고 해치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도 끝까지 선으로 행하며 잠잠히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선악 간에 갚아주시지요.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큰 사랑을 받으니 이를 시기하고 미워한 사람들이 그를 제거하려고 함정을 팠습니다. 한 달 동안은 왕 외에 다른 누구에게도 무엇을 구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든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 법이 자신을 노리는 함정인 줄 알면서도 습관을 좇아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했고, 결국은 체포되어 사자굴에 던져졌지요. 그 결과는 여러분이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지키시니 굶주린 사자들과 하룻밤을 함께 있어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왕은 다니엘을 더욱 신뢰하고 사랑하게 되었구요. 반면 다니엘을 죽이려고 계략을 꾸몄던 사람들은 사자굴에 던져져서 비참하게 죽임당했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다니엘은 자신이 사자굴에 들어가도 죽지 않고 살아서 더 큰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고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죽임을 당할 줄 알면서도 생명을 걸고 기도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다니엘에게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았기에 영적으로 담대할 수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었고, 사자굴 보다 더한 어떠한 고난이 온다 해도 항상 가장 좋은 것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이런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큰 위기 앞에서도 평안하며, 선한 고백과 감사의 기도만 할 수 있었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이렇게 할 수 있으십니까? 예, 감사하게도 그런 분들이 지금쯤 많이 계실 것입니다. 반면 지금은 아멘 할 수 있는데 막상 연단이 오면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나름대로 ‘주님을 사랑하고 생명까지 드릴 수 있다’ 고백 하지만 막상 연단 속에서는 평안을 잃어버립니다.

영으로 이루지 못한 만큼 육신의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이런저런 두려움과 고민으로 전전긍긍하지요. ‘나는 진리를 행했는데 하나님께서 왜 어려움을 주시나? 내가 정도를 지키겠다고 고집하지 말고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을 했어야 하는 걸까? 지금이라도 다른 방법을 써야 하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실까?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믿음을 지켜서 영광 돌리려고 한 것인데 만약 결과가 좋지 않으면 오히려 영광을 가릴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이럴까 저럴까 갈 바를 모르고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지요.

더구나 그 연단이 빨리 끝나지 않고 자기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면 예전에는 발견 못했던 모습도 드러납니다. 연단에 지쳐서 성결 되려는 노력을 그치거나 사명을 소홀히 여기기도 하지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남보다 더 많이 충성했는데, 더 많이 사랑했는데, 왜 나는 축복을 안 주시나’ 이렇게 원망 불평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 저는 최선을 다했는데 이제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투정도 합니다. 혹은 지식적인 믿음이라도 있어서 하나님께 직접 원망은 못한다 해도 “나는 노력해도 사랑받을 수 없나보다. 내 중심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만한 중심이 아닌가보다” 이런 낙심의 말들을 쏟아내기도 하구요.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다 들으시며 다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상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생명의 위협 앞에서 서운함이 틈타거나 “하나님 저는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았는데 어떻게 저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하고 원망의 말을 내었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다니엘의 믿음이라면 그럴 리가 없지만 한번 가정을 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자굴에서 건져주시고 전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 주신 후에 자신이 이전에 원망했던 말들을 떠올려보면 얼마나 민망하고 죄송하겠습니까? ‘이처럼 축복을 예비하신 사랑의 하나님 앞에 내가 어찌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왜 신뢰해 드리지 못했을까?’ 하면서 뼈저리게 후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 증거합니다. (끝)

2012-02-20 오후 11:36:07 Posted
2012-02-23 오전 9:33:54 Updated

이전글 요한일서 강해(30)
다음글 요한일서 강해(28)
검색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