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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일서 강해(25)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일 3:7-9 등록일자 2011.10.02
요한일서 강해 스물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본문 7절-8절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악한 사람이 누군가를 미혹할 때는 진실을 가리고 그럴 듯하게 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보증을 부탁할 때도 “내가 위험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자금이 없으니 보증을 서 주세요, 일이 잘못되면 당신에게 큰 피해가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이렇게 사실 그대로 설명하는 사람은 없지요. “제가 확실하게 성공할 사업을 추진하는데 얼마 있으면 자금도 들어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투자할 중요한 시점이니 한두 달만 보증을 서 주시면 크게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또 문제가 생길 리도 없지만 만의 하나 어떤 문제가 생겨도 백프로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좋게만 설명합니다.

이럴 때, 보증을 금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잘 새겨진 사람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이런저런 이유가 많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나 진리를 명심하지 못한 사람은 생각이 동원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서로 쌓은 친분이 있는데 저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는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나, 돈을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겨우 3개월인데 보증도 못 서 준다면 너무 인정도 없지 않은가, 그러고 나면 앞으로 얼굴 보기가 얼마나 민망하겠는가’ 하지요. 그러면서 보상으로 큰돈을 준다 하니 은근히 욕심도 생기고요.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보증을 서 준다면 이는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만들고 재앙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행동이지요. “악한 사람이 미혹해서 속았습니다, 저 사람이 하라고 해서 범죄했습니다” 이런 말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진리가 없었기 때문이며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한 자기 탓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진리에서 벗어난 결과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단이 사람을 범죄하도록 미혹할 때도 교묘하게 미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그럴 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을 너무 싫어하시고 이런 행동을 계속하면 지옥에 간다, 잠시 동안은 쾌락을 누린다 해도 그 후에는 큰 재앙과 형벌이 임한다”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타협할 빌미를 제공하지요. “백프로 진리대로만 살면 물론 좋겠지만 너는 주의 종도 아닌데 어떻게 온전하게 살 수 있어? 요즘 같은 세상에 이 정도가 무슨 죄라고 할 수 있겠어? 너는 아직 믿음이 큰 것도 아닌데 교회 다닌다고 해서 이런 것도 못 즐기면 힘들어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니? 설교 때 세상 사랑하면 지옥 간다고 하신 것은 더 큰 죄를 지을까 봐 경고하시는 것뿐이야. 조금씩은 세상을 취한다 해도 나중에 한꺼번에 회개하고 돌이키면 돼” 이렇게 미혹해서 조금씩 육의 것을 취하게 하고 점점 더 깊이 세상에 빠져들게 합니다.

더구나 방송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오늘날 세상은 전보다 더 급속하게 죄악으로 물들어갑니다. 온갖 범죄 방법들을 쉽게 접할 수 있고 학생이나 어린 아이들조차 음란하고 폭력적인 내용에 노출되어 있지요. 그렇게 일상적으로 악을 보고 듣고 접하다 보니 점점 마음이 강퍅해집니다.

옛날 사람들 같으면 마음을 찢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만한 죄를 짓고도 오늘날은 양심이 무뎌져서 “그 정도야 그럴 수도 있지”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선한 것을 보아도 쉽게 감동하지 못하고 악한 것을 보아도 얼마나 악한지를 잘 느낄 수가 없지요.

세상 사람들만 아니라 성도들의 신앙적인 양심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는 일을 하면서도 “이 정도는 남들도 다 하는데” 하면서 큰 죄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자기 유익을 좇아 행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남에게 손해를 입히고도 “내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그랬다,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지요.

간음을 하고도 “내가 너무 외롭고 쓸쓸해서 그랬다” 이렇게 환경과 상황으로 핑계를 댑니다. “저 사람이 나를 너무 좋아해서 어쩔 수 없었다, 꼭 결혼할 것이니 괜찮다는 말에 속았다” 하며 남의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진리는 변함이 없고 구원의 기준은 바뀌지 않습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하신 대로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어둠이 짙어지고 세상이 죄로 물들어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이유는 사람들이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도 구원해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죄짓게 하고 사망으로 가게 하는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처럼 우리도 의롭게 살게 하시려는 것이고요.

베드로전서 5장 8-9절 전반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했습니다. 마귀는 굶주린 사자가 먹잇감을 찾듯이 이 땅을 두루 살핍니다. 마귀는 첫 사람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심판 날까지 인류를 미혹하여 죄 가운데로 끌어들이는 존재이지요.

마귀의 기원과 역할에 대해서는 창세기 강해나 악한 영의 세계 설교에서 자세히 설명을 했습니다. 요약하면, 천사장이었던 루시퍼가 교만해져서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용들과 많은 그룹들을 미혹하고 자기 수하에 있던 3분의 1의 천사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반역에 동참하게 했지요.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천사장이라 해도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여 승산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간에 이들을 진압하셨고 무저갱의 깊은 어둠 가운데 가두셨지요.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경작의 섭리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루시퍼를 비롯하여 악한 영들 중 일부를 무저갱에서 풀어주셨습니다. 이들로 2하늘의 공중에 거하게 하시고 인간을 경작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이지요. 이후로 악한 영들은 사람들을 미혹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일들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악한 영들은 인간 경작을 위해 허락하신 한계 안에서만 자기들에게 주어진 권세를 누릴 수 있지요.

그러나 루시퍼는 자기 교만과 어리석음을 여전히 깨우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신이 하나님의 지혜를 대적할 수 있다고 여기며 인간을 미혹하여 범죄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섭리를 어그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끊임없이 악한 일들을 도모해 왔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미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도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핍박하여 어찌하든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악한 자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했지요. 이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하게 하는 것이 바로 마귀의 역할입니다.

사단과 마귀, 귀신, 공중 권세 잡은 악의 영, 이런 것들은 대충 비슷한 의미가 아니라 각각 다른 존재를 지칭합니다. 그중에서도 사단은 루시퍼의 마음입니다. 마치 전파와 같이 공중에 존재하면서 비진리가 있는 사람의 마음에 악한 생각을 불어 넣어주지요. 사람들이 이렇게 마음에 받아들인 악한 생각을 실제 행위로 나타내도록 하는 것이 바로 마귀의 역할입니다.

루시퍼의 배신 때 같이 타락하여 무저갱에 갇힌 천사들은 지금도 무저갱에 갇혀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 극히 일부만 곧 경작에 필요한 수만큼만 풀려나서 마귀와 지옥사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요. 루시퍼와 함께 배신한 천사의 전체 수가 워낙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에 그중 일부라고는 해도 경작의 도구로 쓰이기에 충분합니다.

원수 마귀는 인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부추겨 범죄하게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악한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들을 핍박하며 죽이고자 했고요. 진리를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마귀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진리가 아닌 생각은 결국 사단의 역사를 받는 것이고 진리가 아닌 행동은 마귀의 사주를 받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요.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 가운데 살며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마귀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여러분은 더 이상 마귀의 미혹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하면서 아버지 하나님과 원수인 마귀에게 순종할 수는 없지요. 항상 근신하여 진리 가운데 굳게 서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파하고 담대하게 천성만 향해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어지는 본문 9절에도 사도 요한은 계속해서 죄에 대해 경고합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의 속에는 하나님의 씨가 거한다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씨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8장 11절에 나오는 ‘마음 밭 비유’에서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셨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했지요.

아담의 범죄 이후 태어난 모든 아담의 후손은 영이 죽어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죄 사함 받고 거듭났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새 생명으로 거듭난 것은 바로 썩지 않는 씨,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씨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시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신 분이지요.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우리가 영생의 길을 갈 수 있음을 설명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만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것만으로 하나님의 씨가 되실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사셨습니다. 또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사랑으로 율법을 온전히 완성하셨지요.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의 씨가 되실 수 있었고, 이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에게 새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성령이 곧 하나님의 씨는 아닙니다. 성령은 진리를 증거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고 진리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주시지요. 곧 하나님의 씨를 우리 안에 둘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가 새 생명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비록 성령을 한 번 받았다 해도 하나님의 씨, 곧 진리가 우리 안에 거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19장 11-27절에 나오는 열므나 비유를 통해 한 번 성령을 받았다 해도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 알 수 있지요. 어떤 귀인이 길을 떠나면서 열 명의 종에게 한 므나씩 나눠 줍니다.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장사를 해서 이윤을 남기도록 자금을 준 것입니다. 주인이 다시 돌아왔을 때 어떤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고 어떤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겨서 각각에 해당하는 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종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지 않고 돈을 그냥 수건에 싸 두었기에 아무 것도 남길 수 없었습니다. 이에 게으른 종에게 노한 주인은 처음에 준 한 므나까지 빼앗았지요. 여기서 귀인은 우리 주님이시며 주님께서 맡기신 한 므나는 성령을 뜻합니다. 므나로 장사하여 이윤을 남긴다는 것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성령의 역사대로 진리를 행하여 영적인 열매를 맺어 나가는 것이지요.

마음을 진리로 변화시키고 장성한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듣고 배운 말씀을 명심하여 자기 안에 이뤄 나가야 합니다. 미움, 시기, 분냄, 간음, 욕심, 교만 등 죄악을 벗어버리고 사랑, 온유, 화평, 진실, 겸비함 등 선한 열매들을 맺어 나가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변화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깨우쳐 주시고 변화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요. “그렇게 미워하고 혈기 내면 안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단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으로 오래 참아주렴, 기도 쉬지 말고 열심히 충성해라,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라” 이처럼 성령님께서는 섬세하게 간섭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두게 하십니다.

이런 성령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점점 성령의 음성도 들리지 않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첫사랑의 은혜도 사라지고 점점 세상에 물들어 겨자씨만한 믿음조차 빼앗기게 되지요. 마치 수건에 싸둔 한 므나 조차 빼앗기는 것처럼 마침내는 성령이 소멸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9절 후반절에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여기서 ‘저’는 예수님을 의미하지요. 하나님께로서 오신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심을 다시 한 번 언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우리도 범죄해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시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났다면 반드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씨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있으면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뜻을 밝히 분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알게 되고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되지요. 선이 얼마나 좋은지, 사랑이 얼마나 좋은지, 진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게 됩니다. 누가 억만금을 줄 테니 범죄하라 해도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결코 범죄할 수가 없지요.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자기 영혼을 깨끗하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하나님의 씨가 있다 해도 사람이 아직 성결되기 전에는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범죄할 때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진리를 듣고 배워 알기는 하지만 죄를 짓고자 하는 육의 마음이 그 진리를 가려버릴 때가 있지요.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 속에 계속하여 진리를 마음에 채워 나가면 결국에는 육체의 일도, 육신의 일도 완전히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결국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하나님께로서 난 자답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의미로 하나님의 씨는 '생명의 씨'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물론 생명의 씨는 하나님의 자녀들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하나님의 씨가 그 안에 있다’는 말은 성령을 받아 생명의 씨가 깨어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난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이 ‘생명의 씨’에 대해서는 창세기 강해에서 자세히 설명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잉태된 지 6개월째에 영 안에 생명의 씨를 담아 각자에게 심어 주시지요. 범죄한 아담의 후손들은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생명의 씨를 주셔서 하나님을 찾고 만날 수 있게 하셨지요.

식물의 씨앗이 적절한 환경에서 양분과 물을 공급받으면 싹이 트고 자라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생명의 씨가 깨어나고 죽었던 영이 살아납니다. 성령이 충만할수록 마음이 진리로 채워질수록 생명의 씨가 힘을 얻고 영이 성장합니다. 그런 만큼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지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건강과 젊음, 부요함과 형통함을 누리며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을 수 있지요.

반면 범죄하고 비진리 가운데 살아가면 생명의 씨가 힘을 잃어버립니다. 일단 씨앗에서 싹이 텄다 해도 지속적으로 물과 양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시들시들 말라 죽지요. 생명의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진리 안에 거하며 성령 충만함을 늘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범사에 은혜와 축복의 간증이 넘치며 신속하게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1-10-03 오후 4:07:56 Posted
2011-10-31 오전 10:32:4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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