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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레위기 강해(5)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레1:6-8 등록일자 2002.12.29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소의 가죽을 벗긴 다음에 진행되는 번제의 절차와 우리의 신앙생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 영적인 의미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구약의 제사법 중 소의 번제를 드릴 때 먼저는 가죽을 벗겨 내야 했습니다. 가죽은 세상 때가 묻어 있고 불에 태울 때에 고약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지요. 영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세상 때가 묻은 겉모습을 벗고 경건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나와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의 가죽을 제사장에게 돌려서 필요한 대로 쓸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물질이 풍족하지 못했던 옛날, 더구나 광야를 떠돌아다니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짐승의 가죽은 매우 요긴하고 유용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죽을 벗긴 예물을 불살라 드림으로 사람의 허물과 죄를 사함받게 하셨고 남은 가죽은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허락하셨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긍휼이었지요.
이처럼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나면 다음에는 각을 뜨게 됩니다. 여기서 각을 뜬다는 것은 부위별로 나누는 것으로서, 짐승의 머리를 자르고 다리, 옆구리, 엉덩이 등을 부위별로 자르며 내장도 따로 분리해 내지요. 우리가 수박이나 사과 같은 과일을 웃어른에게 접대할 때도 통째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껍질을 깎아서 보기 좋게 드리듯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도 통째로 불에 태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돈된 형식을 따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각을 뜬다는 것은 영적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의 종류가 나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주일 대예배와 저녁예배가 있고 그 밖에도 수요예배, 금요예배 등으로 나눠집니다. 이렇게 각각의 예배로 나눠지는 것이 바로 각을 뜨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기도할 때 절도 있게 내용을 나누어서 기도하는 것이 바로 각을 뜨는 것과 같습니다. 보통, 기도를 할 때 먼저는 회개 기도와 악한 영들을 물리치는 기도,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교회와 성전 건축, 주의 종과 일꾼들을 위해, 사명 감당과 자신의 영혼이 잘되기 위해 기도하며 이렇게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고 각자의 마음의 소원을 위해 기도하지요. 이처럼 각종 기도의 제목들을 나눠 조목조목 아뢰면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바로 각을 떠서 드리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물론 우리가 길을 가면서도, 또는 휴식을 취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잠잠히 하나님과 주님을 생각하고 묵상하면서 교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요. 그러나 이렇게 교통하는 시간 외에도 절도 있게 각을 떠서 예물을 드리는 것처럼 조목조목 제목을 가지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신속히 응답하시는 것이지요.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 전체가 66권으로 나눠져 양식삼게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66권의 성경 전체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섭리를 통일성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통째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각 권으로 나뉘어 세분되어 있으며 그러면서도 각 권의 말씀들은 서로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짝을 이루고 있지요. 66권의 책이 하나로 되어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분야별로 나눠져 있으므로 더 체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고 우리가 배우고 양식삼기에도 좋은 것입니다.

넷째로,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서 바로 우리의 예배가 여러 가지 순서들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배 전에 먼저 회개의 기도를 하고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여, 주기도문이나 축도로 마칩니다. 그 사이에는 말씀의 선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표 기도와 찬양도 있고 성경 봉독과 헌금 기도 등 여러 가지 순서가 있지요. 그 각각의 과정들이 다 의미가 있는 것이며 이렇게 나누어진 순서를 따라 예배하는 것이 바로 제물의 각을 뜨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오면서도 지각을 하거나 바쁜 일이 있다 해서 일찍 나가기도 합니다. 또는 "다른 순서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설교 말씀만 들으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하지만 예배의 모든 과정이 다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제물의 머리, 배, 다리 등으로 각을 떠서 드리는데 "다리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빼고 머리와 몸통만 드리겠다" 하고 마음대로 드리면 하나님 앞에 온전한 번제가 아닙니다. 모든 부위를 다 불살라 드려야 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예배의 각 순서들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의 특별한 사명으로 인해 예배 시간에 늦거나 먼저 나가도록 인정받은 경우는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사명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늦거나 먼저 나간다 해도 그 중심에 온전한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를 당연히 인정하십니다. 수요예배나 금요예배 같은 경우 너무나 예배를 사모하는데도 직장에서 늦게 끝나는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늦었다면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향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2.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제물의 각을 뜨고 나면 각을 뜬 부위들을 단 위에 올려서 불에 태웁니다. 본문 레위기 1:7-8을 보면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했지요.
여기서 불은 영적으로 성령의 불을 말하며 불 위에 놓는 나무는 바로 성경 말씀의 문맥 내용들을 의미합니다. 66권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들어 있지요. 예를 들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어린 양을 불에 구워 먹으라. 너희는 기도할 때 골방에서 기도하라" 등 성경에 들어 있는 내용 하나하나가 바로 장작으로 쓸 나무의 의미입니다.
불 위에 나무를 놓아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내용 하나하나를 성령의 역사 가운데 양식삼아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때만이 성경의 말씀들이 온전히 우리 마음에 깨달아지고 마음에 심겨진다는 것입니다.
같은 의미로 출애굽기 12:9을 보면 어린 양을 먹을 때 "불에 구워 먹으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이때의 어린 양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어린 양은 우리 주 예수님의 상징이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을 먹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삼는 것인데 이때 날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불에 구워 먹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어린 양을 물에 삶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세상 지식이나 철학을 가미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시키는 것으로서, 이런 설교는 생명을 주거나 영적인 믿음을 심어 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날로 먹는다는 것은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모른 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다보면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칫하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오해할 수도 있지요.
예를 들어 마태복음 6:6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날로 먹으면, 곧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우리가 골방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은밀하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기도하셨고 다니엘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창을 열어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에 보면 강가에서, 혹은 지붕에서 기도했다는 말씀은 있지만 골방에서 기도했다는 말씀은 없지요.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며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진실한 기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면 외부와 차단되어 바깥 세상의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것처럼 기도할 때는 아무런 잡념 없이 집중하여 깊은 마음 중심에서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교통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에 구워 먹을 때, 곧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성경 말씀을 읽을 때라야 이러한 영적인 의미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13:33을 보면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 또한 날로 먹으면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 베드로 등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 밖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때의 예루살렘은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의 지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성으로서 영적인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는 말씀은 결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죽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런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우리의 생명 삼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성령의 역사 가운데 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을 때뿐만 아니라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들어야 이해가 됩니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거나 사람의 생각과 이론에는 맞지 않는 말씀들도 성령의 감동함이 임하면 깨달을 수 있고 중심에서 믿을 수가 있는 것이니 불 위에 나무를 두어, 성령의 역사 가운데 말씀을 깨우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항상 체험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태복음 23:23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시며 외식하는 사람들을 책망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율법의 형식보다는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 곧 의와 인과 신이 중요하지만 율법의 행위를 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과 그림자가 붙어 있는 것처럼 율법에 규정한 형식과 그 내용은 항상 하나된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레위기 말씀을 온전히 양식삼아 형식과 내용 모두를 아름답게 갖춘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에 응답하시며 날마다 더욱 깊은 영의 세계로 인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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