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배

설교 > 레위기 강해

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다음요즘 메일보내기 바로가기복사
제목 레위기 강해(10)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레2:11-13 등록일자 2003.06.01
오늘은 소제의 구체적인 방법을 삼펴봄으로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소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

소제는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입니다. 원래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는 반드시 속죄제물인 소나 양 등 짐승의 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짐승의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사할 때라야 우리의 기도와 간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소제는 대체로 번제와 함께 드려지는 것으로서 별도의 피 흘림이 없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사람들이 땅을 갈아 수고하여 곡식을 얻을 때 심을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고 수확하기까지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그 수확 중에 처음 열매와 좋은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소제로 드렸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소제란, 삶 가운데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모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올려드리는 예물입니다. 우리가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는 어떻게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지 구약 시대 소제의 절차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소제를 드릴 때 항상 곡식의 고운 가루로 소제의 제물을 만들어야 하며 그 위에 반드시 기름을 붓고 향기로운 유향을 놓아야 한다 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어떤 제목으로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라 해도 정성을 다하며 중심으로 드려야 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곡식을 갈아서 소제를 드릴 때 고운 가루를 그냥 불살라 드리기도 하지만 기름을 섞어서 반죽하여 화덕에 굽거나 번철에 구워서 드리기도 하며 솥에 삶아서 드리기도 했지요. 소제를 이렇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리는 것은 사람들이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감사의 조건들도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주일마다 항상 드리는 감사의 제목 외에도 축복이나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아 드리는 감사가 있고 시험이나 연단을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심에 감사하거나 그 밖에도 삶의 다양한 모습에 따라 감사를 드리는 조건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삶을 산다 할지라도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대로 항상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그 마음의 향을 받으시고 기뻐하심으로 우리 삶 가운데 감사의 조건이 더욱 넘치게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2.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그런데 감사의 제목은 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중심과 자세는 항상 동일합니다. 그 중심은 언제나 가장 귀한 것으로, 또한 항상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정성을 다해 소제를 드릴 때 거기에는 기름과 유향을 반드시 첨가하라 하셨는데 반대로 소제에는 넣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바로 누룩과 꿀로서, 누룩을 넣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은 예물을 드릴 때, 남의 눈에 보이려는 외식함이나 세상 염려 근심 가운데서 억지로 드리는 등 순전하지 않은 마음으로 드려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진실한 중심으로 예물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꿀은 왜 넣지 말라 하신 것일까요? 누룩을 넣지 말라 하신 까닭이 가루의 순전함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처럼, 꿀을 넣지 말라 하신 것도 꿀이 고운 가루 자체의 성질을 변질시키기 때문입니다. 특히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생산되는 꿀은 대추와 포도로부터 추출된 것으로서 쉽게 발효되고 상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꿀을 넣어 가루의 순전함을 변질시킨 것을 금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할 때는 꿀이 귀한 것이고 달콤한 꿀을 넣은 빵이 더 맛있으니 예물에도 꿀을 넣는 것이 더 좋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 보기에 좋은 것이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대로를 받기 원하시며 또한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서 한번 어떤 것을 정했으면 정한 그대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무엇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정했다가도 상황이 바뀌면 처음 드리기로 정했던 것을 드리지 않거나 다르게 바꿔서 드리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사람의 생각 속에 변질시키거나 성령의 역사에 따라 어떤 것을 하리라고 정한 것을 자기 유익에 맞춰 변개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신명기 23:23에 보면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했고 레위기 27:9-10에는 "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서원물로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 그것을 변개하여 우열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혹 생축으로 생축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한번 어떤 짐승을 드리기로 정했다면 그보다 나쁜 것으로 바꿀 수 없음은 물론이요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서도 안 되며 임의로 바꿀 때는 둘 다 드려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더구나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나 성령의 주관을 받아서 드리기로 작정한 것이라면 반드시 정한 그대로 변개함 없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물을 드릴 때뿐 아니라 우리가 범사에 정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에 변개함이나 간사함 같은 속성이 있으면 이로 인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행함이 나오지요.
예를 들어,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하신 것을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변질시켜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버림받기까지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말렉 족속에게 보내시면서 아말렉의 왕과 모든 백성, 또한 짐승들까지도 다 멸하라 하셨지요. 그런데 사울은 막상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쟁에서 이기자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변질시켜 아말렉의 왕과 짐승들 중 좋은 짐승들은 살려서 끌고 왔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사울을 책망하셨는데 이때도 사울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음으로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고 말았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이 정한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에는 아무리 좋아 보인다 해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셨을 때는 하지 말아야 하며 시간에 따라 변질되는 것도 없어야 합니다. 참으로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을 가진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변개함 없이 지켜 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뻐하시며 그 예물도 열납하여 축복 주실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을 보면 때때로 소제에 누룩을 넣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외적인 경우로서 이 예물은 불에 살라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제물을 단에서 앞뒤로 흔들어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만 표현하고 그 제물은 다시 가져 와서 사람이 나눠 먹지요. 이런 방법의 제사를 '요제'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불에 살라 드리는 소제와는 달리 이렇게 변형된 절차 속에서 드릴 때는 누룩을 넣는 것이 허락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물에 있어서 변질되고 변개하는 것이 가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아버지 앞에 드려야 한다고 필수적으로 규정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되 상황에 따라 약간의 변형이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융통성을 두신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믿음 있는 일꾼들은 주일 예배 외에도 각종 공예배에 당연히 참석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 주일 예배는 드리되 금요철야나 수요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해서 이것을 죄라 하시지는 않지요. 또 예배의 절차를 보아도, 주일 예배 때는 정해진 격식에 따라 온전히 드리지만 구역 예배, 심방 예배 등은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있는 예배의 기본적인 틀은 지키되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가감하는 절차가 있지요. 이것이 바로 때때로 누룩을 넣은 소제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의 영적인 의미입니다.
실생활 속에서 한 가지 더 예를 들면, 직장 상사가 우상을 섬기므로 우상에게 제사 지내는 자리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 동참하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피치 못하여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부정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함께 우상 앞에 절을 해서는 결코 안 되지요. 이렇게 기본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지만 그 안에서 상황이나 믿음에 따라 융통성을 허락하시는 분야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3.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

본문 레위기 2:12을 보면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 했습니다. 첫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무인데 여기서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라"는 특이한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께 번제의 제물이나 소제의 예물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드렸을 때는 항상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예물은 하나님께서 기뻐 흠향하실 향기로운 예물로 드려져야 하는데 왜 이때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라" 말씀하신 것일까요? 이 말씀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볼 수 있도록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기뻐 흠향하실 향기로운 냄새로 드려야 하는 것이되 육적인 냄새를 목적으로, 곧 곡식을 불에 살라서 그 타는 냄새를 발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단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소제를 드리는 목적은 예물을 불살라 향기를 내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제사의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마음의 향을 올려 드리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것을 많이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중심으로 드리지 않는다면 그 소제의 향은 사람 편에서 향기로운 냄새일 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자녀가 자신을 낳아 주시고 사랑으로 양육하여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함으로 중심에서 감사하며 사랑의 마음을 담아 예물을 드릴 때라야 그 예물이 부모님의 마음에 참 기쁨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물을 드릴 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신 아버지께 대하여 넘치는 감사와 사랑의 향으로 마음을 다해 정성껏 드려야 합니다. 만의 하나라도 습관적으로 드리거나 중심의 향이 없이 예물을 드리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할 바를 다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소제를 드릴 때 그 곡식을 드려서 태우는 육의 냄새를 발하게 함으로 '내가 하나님께 할 바를 다했다' 하는 마음이 아니라 정녕 그 예물 안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담아 중심의 향을 발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는 항상 아름다운 사랑과 감사의 향기로운 예물로 드림으로 이를 기뻐 받으신 하나님께서 넘치게 부어 주시는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 풍성한 열매들로 맺혀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4-06-07 오전 1:51:34 Updated

이전글 레위기 강해(1)
다음글 레위기 강해(18)
검색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