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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15)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8:3-14 등록일자 2014.07.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세기 강해 일백십오 번째 시간입니다.

본문 3-14절을 보면 대홍수의 물이 감하고 땅이 마르기까지의 과정이 나옵니다. 대홍수는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시작됐습니다. 노아 일행이 방주에 들어간 것은 7일 전인 2월 10일이었고요. 비는 40일 동안 내렸는데, 그로 인해 150일 동안 물이 온 지구를 뒤덮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1월 1일이 되자 물이 모두 빠져 땅이 말랐지요. 그럼에도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지 않았고, 2월 27일이 되어서야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면 노아가 방주에서 지낸 기간은 총 얼마일까요?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때는 홍수가 시작되기 7일 전으로 노아 600세 2월 10일이었지요. 방주에서 나온 날은 601세 2월 27일입니다. 따라서 노아 일행이 방주에서 지낸 기간은 정확히 1년 17일입니다.

노아의 홍수와 관련된 숫자들 중에 특이한 점을 발견하셨는지요? 중요한 날짜에 ‘17’이라는 숫자가 등장하지요. 홍수가 시작된 날짜가 2월 17일이었고, 물이 감하기 시작한 날짜는 7월 17일이었습니다. 또 노아 일행이 방주에서 지낸 기간도 1년 17일이었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왜 이 ‘17’에 맞추어 중요한 일을 행하셨을까요? 그것은 ‘17’이라는 숫자가 영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17’은 영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맞추어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 친히 일을 이루신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 속에 때가 되어 정확하게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홍수가 시작된 날짜와 물이 감하기 시작한 날짜를 ‘17’이라는 숫자를 지닌 날에 이루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아버지 하나님께 풀이 받고 보니 ‘17’이라는 숫자는 저나 우리 교회와도 관련이 깊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둘째 누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날이 1974년 4월 17일이었습니다. 또한 기도원 원장과 결혼한 날은 1월 17일이었지요.

1982년 교회 개척 후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건축할 대성전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는데 총 17명 성도의 영안을 열어 보여 주셨습니다. 1995년 6월 17일에 있었던 ‘제14회 복음성가 경연대회’에서는 우리 ‘빛의 소리 중창단’이 대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빛의 소리 중창단’ 멤버는 세 명이었는데 지금의 교역자 회장인 이수진 목사도 그중의 한 명이었지요.

본 제단은 창립 17주년을 맞았던 1999년도를 기점으로 새로운 전기(前期)를 맞았습니다. 본 제단을 친히 인도하시고 역사해 가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지요. 98년부터 시작된 세 차례 시험이 끝나면서 전 세계를 향해 오중복음을 마음껏 외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2000년도부터 시작된 해외 대형 연합성회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권능이 나타났지요. 2005년 9월 1일에는 GCN이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첫 시험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방송 채널 번호가 17번이었지요.

이처럼 본 교회의 역사와 ‘17’이라는 숫자도 여러 면에서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본 교회가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으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시고 행해 나가고 계신다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3절에 보면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150일 후에 감하였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단번에 물이 물러가게도, 감하게도 할 수 있으시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150일간 단계적으로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께서도 스스로 정해 놓으신 질서와 법칙을 좇기 위함입니다.

대홍수 심판이 시작되면서 하나님의 근본의 빛이 거두어짐으로 인해 이 땅은 육의 속성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근본의 빛으로 둘린 상태에서는 영의 흐름과 법칙에 적용을 받는 부분이 있었지만 대홍수 이후에는 육의 흐름에 따른 육의 질서와 법칙에 적용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때부터는 육의 질서와 법칙에 맞추어 역사해 가시지요.

그렇다면 육의 질서와 법칙을 좇는 것과 물을 단계적으로 감하게 하시는 것과는 과연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이 땅에는 새로운 인간 경작이 시작됩니다. 이를 위해 이 땅에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적절한 환경이 준비되어야 하지요. 온통 홍수로 덮였던 이 땅에서 물만 감해진다 하여 당장에 사람에게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름철 집중호우나, 태풍, 쓰나미 등으로 침수되었던 가옥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침수됐던 집에서 물만 빼내면 곧바로 사람이 그 집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대홍수 후의 이 땅도 물만 빠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단번에 물을 다 사라지게 하셨다면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세상에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노아 일행이 방주에서 나올 때에 맞춰 이 땅을 새롭게 조성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방주에서 나온 사람들과 짐승들, 새와 가축들이 살아가기에 가장 알맞은 환경이 육의 법칙에 의해 자연스럽게 조성되기까지 단계적으로 물을 감하게 하셨던 것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창조하지 않으셨지요? 6일 동안 단계별로 차근차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육의 몸을 입고 육의 공간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육의 법칙과 질서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질병을 치료해 주실 때도 몸의 질서에 맞게 역사하시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으로 고통 중에 있던 한 성도님이 믿음으로 치료받은 적이 있지요.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그 성도가 치료되는 과정을 보여 주셨습니다. 맹장이 터짐으로 생긴 배 속의 오물들을 순간 그곳에서 소멸시키신 것이 아니었지요. 먼저, 장(腸)으로 흡수되게 하셨다가 몸 밖으로 배출되게 하신 것입니다.

또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료받은 김은득 권사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온전케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시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시간 간격을 두고 단계적으로 치료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몸속에 핏줄과 힘줄부터 만들어 가시면서 점차 피부에도 새살이 생겨나게 하셨지요. 저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배 속의 태아가 성장하는 과정이 이렇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화상으로 손상됐던 피부에서 새살이 돋고, 살 속으로는 핏줄까지 선명하게 보였지요. 이렇게 정상으로 회복되는 기간도 세상에서 치료되는 속도보다 훨씬 짧았습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3도 화상 입은 피부가 정상으로 회복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의 권능으로는 가능하며 육의 법칙을 따른다 해도 그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 육의 공간의 법칙과 질서를 따라 과정을 건너뛰지 않고 다 밟으시지요.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기본 법칙 위에 각 사람의 믿음에 따라 축복하시지요. 어떤 이에게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어떤 이에게는 30배, 60배, 100배로 거두게 하십니다. 그래서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축복의 씨앗을 심어야 하며, 축복받을 그릇을 준비해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복을 받을 때라야 육적인 만족과 함께 영적인 참 행복도 누릴 수 있지요.

따라서 자신이 볼 때 분수에 지나는 복이라고 생각될 때는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육적인 만족은 누릴지라도 영적으로는 자기 영혼이 피폐해질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심령이 되지 않아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갈급함도 사라지지요.

그러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는 사람은 안전합니다. 아무리 풍성한 복을 받는다 해도 마음이 세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더해지지요.

성도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스스로 이 땅에 세우신 창조 질서를 지키신다 했습니다. 육의 질서와 법칙을 무시하지 않고 공의에 맞게 역사하시지요. 다만 영적인 공의가 맞았을 때는 육의 공간에서 가능한 속도를 초월할 수 있지요. 그렇다 하여 과정을 건너뛰는 것은 아닙니다. 과정은 밟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지요. 이 땅에서 이뤄지는 믿음의 역사는 항상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공의’에 맞아야 합니다. 성도님들은 이 사실을 꼭 기억하고 삶 가운데 적용하심으로 진정 아버지 하나님께 복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07-29 오전 1:44:54 Posted
2014-09-19 오후 4:52:5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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