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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5)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1:1 등록일자 2009.11.13
창세기 강해 열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적인 존재는 두 부류로 천사와 그룹이 있다 했습니다. 지난 세 시간 동안은 천사에 대해 대략적으로 말씀드렸지요. 이 시간부터는 그룹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사는 그 형체(形體)가 사람과 거의 같은데 사람과 달리 날개가 있다 했지요. 그룹은 사람이 아닌 동물의 형체이며 종류가 매우 다양합니다. 천사와 그룹은 분명히 다른 존재입니다. 만약 그룹이 천사의 한 부류라면 성경에 굳이 그룹과 천사를 구분 지어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소개된 그룹은 그 형체부터 천사와 다른 것을 알 수가 있지요.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왜 천사와 다른 그룹이란 존재를 또 만드셨을까요? 천사와 그룹은 모두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적인 존재들이지만 각각 사명이 다릅니다. 천사는 다양한 일들을 두루 감당하지만 그룹은 주로 호위와 경계 분야를 감당합니다. 그룹의 세계에도 서열과 질서가 있습니다. 그룹 중에서 서열이 높은 그룹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호위(護衛) 하지요. 호위(護衛)란 따라다니며 곁에서 보호하고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룹들이 하나님을 호위한 장면이 성경 곳곳에 나옵니다. 먼저 시편 99편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요동할 것이로다" 했습니다. 열왕기하 19장 15절에는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했지요. 그리고 시편 18편 10절에는 하나님께서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로 높이 뜨셨도다" 했습니다.
이처럼 늘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있으면서 하나님을 호위하는 그룹도 있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루시퍼에 대해 설명하면서 천사장인 루시퍼를 에스겔 28:14에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라 한 이유를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늘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호위했던 그룹들처럼 루시퍼도 항상 하나님 가까이에 와 있었지요. 이처럼 루시퍼가 그룹의 역할도 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루시퍼를 그룹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경계(警戒)를 서는 그룹에 대한 기록도 나옵니다. 여기서 경계(警戒)란 적의 기습 곧 예기치 못한 침입을 막기 위해 주변을 살피면서 지키는 활동이지요. 창세기 3장 24절에 보면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아내신 후 에덴동산 동편을 그룹들로 지키게 하셨지요. 더 정확히 말하면 먹으면 영생할 수 있는 생명과일이 열린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룹들은 무엇으로부터 이 생명나무를 지키는 것일까요? 바로 둘째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로부터 지킵니다. 둘째 하늘에는 에덴동산도 있지만 악한 영들이 머무는 어둠의 영역도 있습니다. 루시퍼의 반역 이후 만들어진 악한 영들이 인간 경작의 기간 동안에 머물며 활동하는 곳이 이 둘째 하늘에 있지요.
에베소서 2장 2절에 보면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 악한 영들이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룹들을 보내어 경계하게 하신 것입니다. 물론 천사 중에서도 미가엘 군대장관과 천군들도 경계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그룹은 천사들이 경계하는 것과는 차원이 좀 다릅니다. 그룹이 어떤 특정한 지역을 지키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악한 영들은 그곳을 넘볼 생각을 못하지요.
비유를 들면 어떤 집을 굉장히 사납고 무서운 개들이 항상 지키고 있는 것과 수위 아저씨가 지키고 있는 것은 다릅니다. 그룹들은 호위와 경계가 주된 사명인 만큼 위엄과 권세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룹의 형체를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하게 만드셨을까요? 이 땅에 동물의 종류가 수만 가지 이상이듯이 사실 그룹의 종류도 무수히 많습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창조물들을 만드실 수 있는지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무궁무진(無窮無盡)함 곧 끝이 없고 다함이 없음을 보여 주신 것이지요. 다시 말해 그룹의 존재는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매우 크시고 광대하심을 나타냅니다. 또한 그룹의 존재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비유를 들면 옛날에는 왕을 상징하는 문양이 있었습니다. 어떤 문서나 옷 등에 그 문양이 있는 것만 봐도 왕의 위엄과 권세가 느껴지지요. 이런 것처럼 바로 그룹이란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위엄과 권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앞서 그룹들도 서열이 있다 했고 높은 서열의 그룹들은 항상 하나님의 보좌를 호위한다 했습니다. 이 높은 서열의 그룹들은 그 위엄과 권세가 대단하지요. 따라서 이 호위하는 그룹들의 존재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도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면 옛날 왕들이 행차를 할 때 왕을 호위하고 따르는 무리의 행렬이 매우 길었습니다. 왕이 탄 가마나 수레도 크고 화려하며 왕을 호위하는 군사들에게서도 위엄과 권세가 느껴졌지요. 그런데 만일 왕이 혼자서 말을 타고 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무래도 초라해 보이지 않겠는지요. 이처럼 호위를 받을 때와 받지 않을 때에 느껴지는 왕의 위엄과 영광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옛날 왕정시대에 보면 호위받는 대상의 권세에 따라서 호위의 규모도 다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황제의 권세, 왕의 권세가 각각 달랐지요. 또한 여러 명의 왕자가 있다 해도 왕세자와 다른 왕자들의 권세가 달랐습니다. 호위하는 군사의 수도 달랐고 각 군사의 직위도 달랐습니다. 왕과 왕자가 있다면 일반적으로 더 큰 권세를 가진 군사가 왕을 호위했지요. 군사의 서열에 따라서 호위하는 대상도 달라졌던 것입니다.
그룹의 세계도 이처럼 서열이 있고, 각각의 서열에 따라 권세와 위엄도 다릅니다. 더구나 그룹의 주 사명이 호위와 경계이기 때문에 이런 질서는 더 엄격하지요.
그래서 그룹은 어떤 명령이 내려지면 마치 로봇이 움직이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착착 수행합니다. 천사들도 명령에 오직 순종만 하지만 그룹들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과는 분위기나 차원이 다르지요.
비유를 들면 잘 훈련받은 개들은 주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순종합니다. 어떤 물건을 던지며 "물어 와" 그러면 쏜살같이 달려가서 그것을 물어 오지요. 그런데 만일 그 주인이 이와 똑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종에게 명령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종도 물론 주인의 말에 순종하겠지만 개가 순종할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지요. 그것이 그룹과 천사의 차이입니다. 여기서 개가 그룹에 해당한다면 종은 천사에 해당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때에는 그룹들도 함께 움직이며 호위합니다. 즉 하나님 가까이에는 항상 그룹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막과 성전에도 그룹의 형상을 만들거나 무늬를 넣게 하셨지요.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성막에는 언약궤 위에 얹는 속죄소에 두 그룹의 형상을 만들게 하셨지요. 출애굽기 25장 18~22절에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모세)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셨습니다.
두 그룹이 마주 보며 날개를 높이 펴서 감싸고 있는 공간을 속죄소라고 하지요. 이곳 속죄소가 바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었습니다. 성막에서는 속죄소 위뿐만 아니라 성막 곳곳에 그룹들을 무늬 놓게도 하셨지요. 출애굽기 26장 1절에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한 대로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도 언약궤가 보관되어 있는 내소에 그룹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감람 목을 재료로 하여 높이가 십 규빗인 그룹을 조각하고 금으로 입혔지요. 바로 10규빗은 약 4.5미터를 말합니다.
열왕기상 6장 27절에 보면 "솔로몬이 내소 가운데 그룹을 두었으니 그룹들의 날개가 폐었는데 이 그룹의 날개는 이 벽에 닿았고 저 그룹의 날개는 저 벽에 닿았으며 두 날개는 전의 중앙에서 서로 닿았더라"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내외소 사면 벽들과 문짝들에도 그룹들을 아로새겼지요. 솔로몬 성전 내부 벽들의 그룹 무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과 성막에는 그룹 형상의 조각이나 그룹 무늬가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는 영의 세계에 계신 하나님의 주변에 그룹들도 항상 함께 있음을 형상화한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부터는 대표적인 그룹 몇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룹 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것은 용과 네 생물입니다. 이들은 그룹의 머리급으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최측근에 있었지요. 그런데 각기 사명과 역할은 조금 달랐습니다.

먼저 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용은 세상에서는 상상의 동물 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존재이지요. 그런데 용은 단지 상상의 동물이 아니라 영의 세계에 실제로 있는 존재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용의 모습은 몸은 거대한 뱀과 비슷한데 비늘로 덮여 있고 네 개의 발을 가졌으며 뿔은 사슴에, 귀는 소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용의 처음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있어서 용은 마치 주인의 사랑을 받는 애완동물과 같았지요.

1983년도에 제가 기도를 하던 중에 하나님께서는 용에 대해 알려 주셨습니다. 먼저 환상으로 보여 주신 장면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는데 그 당시에는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아래쪽으로는 아름다운 옷자락이 펼쳐져 있고 드라이아이스 같은 연기가 덮여 있었지요. 그 연기는 이 세상의 드라이아이스보다 훨씬 밝고 환한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보좌 주위를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는 네 마리의 용이 두르고 있었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비스듬히 보좌에 앉으셔서 용의 깃털을 쓰다듬고 계셨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용은 몸에 비늘이 있지만 원래는 매우 부드러운 깃털이 있었습니다. 그 깃털들 하나하나에서는 보석들이 서로 부딪힐 때 빛을 내는 것처럼 오색찬란한 빛들이 눈부시게 발했지요. 용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러한 용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를 두르고 있으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장식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용은 그룹의 머리급인 만큼 위엄과 권세와 능력도 대단히 컸습니다. 또한 용 휘하에는 용이 부릴 수 있는 그의 사자들이 무수히 많았지요. 용의 사자들은 매우 다양한 동물의 형체를 갖고 있는데 그들도 각기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용들이 루시퍼의 간교한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가담하고 말았지요. 루시퍼가 용을 꾄 과정은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릴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용들은 저주를 받아 그 모습이 무섭고 흉측하게 변했습니다. 용의 휘하에 있던 용의 사자들 일부는 용의 지시에 따라 하나님을 대적했으므로 함께 저주를 받아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지요. 그리고 용들과 용의 사자들은 루시퍼의 부하로서 악한 영의 세계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인간 경작의 기간 동안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용과 그의 사자들이 군대장관 미가엘 천사장의 군대와 싸우는 장면이 나오지요. 계시록 12장 7~9절에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했습니다. 이러한 용이 원래는 하나님 최측근에 있으면서 매우 큰 사랑을 받았던 그룹이었음을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제 그룹의 또 다른 머리급인 네 생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에는 네 생물에 대해 꽤 상세하게 기록돼 있지요. 특히 에스겔 1장과 10장에 네 생물의 모습과 움직임이 자세히 나오고 요한계시록 곳곳에 네 생물이 나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처음 네 생물을 본 기록은 에스겔 1장에 있는데 그 장소가 그발 강가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1장 5절에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라고 시작하며 네 생물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했지요.
이후 에스겔은 집에서 두 번째로 네 생물을 보았는데 그때의 기록은 에스겔 10장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10장 20절에 보면 "그것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본 바 이스라엘 하나님의 아래 있던 생물이라 그들이 그룹들인 줄을 내가 아니라" 했지요. 에스겔은 네 생물을 두 번째 보고 나서 말하기를 이번에 본 그룹들이 저번에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네 생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로 네 생물이 천사가 아니라 그룹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요. 네 생물은 그룹들의 머리급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 직속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평상시엔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있지요.
계시록 4장 6절에 보면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기록 중에는 그룹이라고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그룹일 때는 네 생물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시편 80편 1절에도 "요셉을 양 떼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 빛을 비취소서" 했습니다. 여기에 나온 그룹도 네 생물을 가리키지요. 네 생물은 이처럼 하나님의 보좌를 사방으로 둘러 호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아 그것을 수행하지요. 따라서 네 생물은 대단히 큰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 휘하에 수많은 그룹들이 있어서 그들을 통솔하지요. 앞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를 지키는 일도 그룹들이 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그룹들도 네 생물의 휘하에 있는 것입니다.

네 생물의 직위를 이 세상의 것으로 비유하면 오늘날의 대통령 경호실장 또는 옛날 의금부의 머리급에 해당합니다. 의금부란 조선 시대에 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중죄인을 신문(訊問)하는 일을 맡은 관아이지요. 예를 들어 왕권에 도전하는 반역죄ㆍ모역죄 등의 대죄(大罪)를 지은 사람은 의금부에서 처리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주인을 배신하고 주인에게 어떤 해를 가했다면 그 사람은 그 관할 관청에서 재판을 받았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왕을 대적했다면 그 사람은 의금부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네 생물은 하나님께 직접 관련된 죄가 있을 때에 하나님의 명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성령 훼방, 모독, 거역 등의 죄가 그것이지요. 성령 훼방, 성령 모독, 성령 거역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성령을 훼방하거나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을 직접 거스른 죄를 지은 경우에 네 생물에 의해서 그 죄가 다스려집니다. 이 네 생물의 모습과 사명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에는 용과 네 생물 이외에 다른 그룹들에 대한 기록도 나옵니다. 에스겔 41장 18~19절에는 얼굴이 두 개인 그룹이 나오지요. "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편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편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라고 했습니다. 네 생물은 얼굴이 네 개인데 여기 나온 그룹은 두 개인 것입니다.
또 이사야 6장 2절에는 스랍이 나오는데 이 역시 그룹의 일종입니다. 이처럼 그룹에는 여러 부류가 있고 그 중에 네 생물이 그룹의 머리급으로서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의 세계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넓습니다.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적인 존재들은 주로 인간 경작과 관련이 있지요. 우리는 이에 대해 성경 곳곳에 부분적으로 기록된 내용들을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연결해서 영의 세계 대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영의 세계는 육의 세계보다 차원이 높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는 만큼 영적으로 힘이 되지요. 나아가 여러분이 영의 마음을 이룬 만큼 이 땅에서도 영적인 권세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빛이 비추면 어둠이 자연히 물러가듯이 영의 마음을 온전히 이룰수록 가난, 질병 등 생활의 어려움도 물러가지요.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영을 더욱 사모하고, 영으로 들어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육의 세계인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요, 영의 세계인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서 범사가 잘되고 형통한 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11-16 오후 9:48:59 Posted
2012-03-24 오전 3:29:0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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