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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1:1 등록일자 2009.10.16
창세기 강해 열한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성자 하나님의 명칭들을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성부 하나님의 명칭 중 성신과 성령의 차이에 대해 말씀드렸지요. 그리고 성령 강림에 대해 구약에 예언된 말씀들도 살펴보았습니다.
그중에서 에스겔 36:26-27에는 장차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오실 성령께서 어떤 사역을 이룰 것인지도 잘 나오지요. 먼저는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했고,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했습니다.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는 것은 마음의 개간을 도와주신다는 의미이지요. 이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율례를 행하도록 돕는 일은 성령의 가장 주된 역할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근본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때부터 구세주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성령 하나님은 근본에서 분리될 때부터 돕는 영으로서의 사명을 받으셨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근본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신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이러한 성령의 역할과 속성에 관련 있는 명칭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성령님의 근본의 사명인 돕는 영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명칭이 있습니다. 바로 보혜사(保惠師)이지요. 보혜사(保惠師)란 지킬 보(保), 은혜 혜(惠), 스승 사(師)로 성도를 보호하고 돕는 분이란 뜻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보혜사의 역할을 하셨지요. 그래서 요한복음 14:16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지요. 이미 예수님 자신도 보혜사의 역할을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26에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보혜사로 오셔서 어떤 역사를 이룰지를 알려 주신 말씀이지요.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신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은 진리이지요. 이처럼 성령께서는 우리를 오직 진리로 가르치시고,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요한일서 5:7 후반절에 "성령은 진리니라" 했듯이 성령의 속성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속성을 강조한 명칭이 있는데 바로 요한복음 14:17에 나오는 진리의 영 입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말씀 자체인 근본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셨지요. 근본 하나님과 동일한 마음, 생각, 지혜, 권능 등을 가지고 분리되셨다 했습니다. 이러한 성령 하나님의 분체인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의 영인 성령을 세상 사람들은 볼 수도, 알 수도, 받을 수도 없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압니다. 성령이 마음 안에 친히 오셔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보혜사로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로마서 5:5에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자녀들이 사랑의 끈으로 단단히 연결되게 해 주시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깨닫기까지는 성령께서 참으로 많이 애쓰신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26-27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하나님의 자녀들을 너무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지중지 돌보시는지요. 혹여 꺼져 가는 심지와 같은 영혼이 있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항상 아버지 앞에 간구하십니다. 오히려 그 당사자보다도 더한 탄식과 안타까운 심정으로 아버지의 용서와 긍휼과 자비를 구하시지요.
또한 죄에서 돌이킬 힘이 없는 영혼에게는 성령께서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얼마나 큰 사랑을 주셨는지를 다시금 깊이 깨닫게 해 주시지요. 그 사랑을 기억하여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인생들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으로 그 연약한 마음을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회개시키고,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역사가 성령의 근본 사명입니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큰 사명이지요.
이러한 사명 까닭에 성령님께서는 근본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실 때 신성보다는 인성이 더 부각되게 됐습니다. 인생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인생들의 입장에서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성령께서는 공평과 공의적인 면모도 있으시지만 많은 긍휼과 자비, 관용과 덕과 사랑으로서 인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고 깨닫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으로 더 사랑하게 되면 자연히 더 힘써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첫 번째 역할입니다.

두 번째로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음성을 들려주시고, 마음을 주관하셔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6:13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하셨지요.
그러면 성령의 음성은 어떻게 들릴까요? 마음에 계신 성령께서 하나의 인격체로서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해 주시거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 주십니다. 이것이 여러분 마음에 들리지요. 예를 들어, 어떤 상황에서 성령께서 달라면 주라, 원수도 사랑하라, 섬기는 자가 큰 자다 등등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 주십니다. 또는 여러분이 예배 시간 설교 중에 들었던 진리의 말씀을 떠올려 주시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어떤 경우에는 성령께서 여러분이 행할 바와 말할 바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8:29에는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했습니다. 그 병거에는 당시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타고 있었지요. 성령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빌립 집사로 하여금 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령의 주관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성령의 주관은 내주하신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도해야겠다, 금식해야겠다, 누구를 구제하고 싶다는 등의 마음이 들게 하십니다. 또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 이것이 더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되겠다는 등의 마음이 들게도 해 주시지요. 사도행전 16:6에 보면 사도 바울의 경우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했는데 바로 성령의 주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의 음성으로 들은 것이나 성령의 주관 받은 것을 우리 편에서 순종해 나갈 때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응답받고 싶은 소원이 있을 때 얼마 동안을 작정해서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고 합시다. 이를 성령의 주관이구나! 하고 순종하여 마음과 정성을 다해 작정을 이행한다면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지요.
이처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주관과 인도받는 것을 종합적으로 성령과 교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과의 교통은 각 사람의 마음에 진리가 얼마나 있는가에 따라 교통함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비유를 들어 보면 아무리 훌륭한 수학 박사님이라 해도 초등학생에게는 그에 맞는 수준만큼 밖에는 가르쳐 줄 수가 없습니다. 외국어 선생님도 마찬가지이지요. 선생님은 외국어를 매우 잘 안다 해도 배우는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가르칩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만 외국어로 말할 수 있고, 학생들도 알아들은 만큼만 대답할 수가 있지요.

여러분이 성령의 교통함 가운데 성령의 음성과 주관과 인도를 받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만 가르쳐 주시며, 여러분이 듣고 순종할 수 있는 만큼을 들려주시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깨우쳐서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있는 진리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진리가 존재하는 만큼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지요. 마음에 비진리가 더 많은 사람은 성령의 음성과 주관보다 사단의 음성과 주관을 더 잘 받게 됩니다. 그런데 미세한 성령의 음성이라도 바로바로 순종하는 사람은 마음도 진리로 바로바로 바뀌지요. 진리에 순종하는 행함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음성을 들어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순종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더 깊은 영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정체되고 말지요. 성도님들 모두 성령의 음성에 꼭 순종하심으로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돕는 영이신 성령은 세 번째로 개인교사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르치시고, 무엇을 지시하거나 장래 일도 알려 주십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2:26에 보면 시므온은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2:11-12에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이 말씀을 입증하는 한 예가 나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쳐 줬는데 이 사건 이후 복음을 전하자 남자의 수만도 약 5천 명이나 믿게 되었지요. 이처럼 믿는 사람이 많아지자 이를 싫어한 제사장들과 관원과 장로들이 사도들을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권세 있는 자들인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모인 가운데 세우고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며 힐난하기 시작했지요. 이에 사도행전 4:8-9에 보니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하고 시작하여 예수님이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사도행전 4:10-12에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담대하게 선포했지요.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을 잡아 왔던 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이어지는 사도행전 4:13-14에 보니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육적으로 아무리 위협적인 상황에 처해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지요.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나 사도행전 22장, 26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간증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한번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스데반은 살기등등한 유대인들 앞에서도 얼마나 막힘없이 담대하게 말씀을 증거 하는지요.
사도 바울도 그 당시 잡힌 몸이었는데도 로마 총독과 유대의 왕 앞에서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담대하게 증거 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스데반과 사도 바울은 개인의 지혜나 능력으로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지요.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그처럼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주변이 없거나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힘든 분이 있다면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능히 스데반처럼 사도 바울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께서 하시도록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께서는 장래 일도 알려 주실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6:13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장래 일을 미리 아시는 분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뿐이지요.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때에 따라서 마음이 깨끗한 자녀들에게 장래 일을 알려 주기도 하십니다.
아모스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했습니다. 성령님도 아버지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이시므로 장래에 될 일을 미리 아시지요. 따라서 성령과 밝히 교통하는 사람들은 장래 일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본 교회에서 지금까지 선포된 예언들이 하나도 틀림없이 정확하게 맞았던 것도 그것이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네 번째로 성령은 돕는 영으로서 각 사람의 그릇에 맞게 은사와 권능을 주십니다.
먼저 은사란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로서 고린도전서 12:8-10에 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가 나오지요.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그리고 능력 행함과 예언함과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 말함과 방언 통역함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은사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구하는 사람이 합당한 마음 그릇을 준비하면 일시적으로 또는 지속적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권능은 좀 차원이 다르지요. 사도행전 1:8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권능은 예리한 칼과 같아서 선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해 주시지요. 권능을 받으면 죽은 것을 살릴 수도 있고, 천기를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어마어마한 권세와 능력이 함께 따르지요. 이러한 권능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사심으로 사용된다면 이 세상은 매우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능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지요.
또한 선한 마음으로 아무리 순종 잘하는 사람이라도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은 기도를 무수히 쌓았을 때 주어지지요.
주님처럼 영혼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적인 사람은 권능의 필요를 절실하게 느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음을 깨닫지요. 그래서 간절히 뜨겁게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도, 믿음의 기도가 공의가 정한 선까지 채워지게 되면 성령께서 비로소 권능을 허락해 주시지요. 이렇게 한 번 주어진 권능은 영구적입니다. 그 마음이 변개하지 않는 영의 사람에게만 권능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성령을 일컫는 명칭 중 마지막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갈라디아서 4:6에 나오는 아들의 영입니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여기 아들의 영에서의 아들은 곧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성령 하나님도 성자 하나님처럼 근본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셨습니다. 이 최초의 영의 분리 이후 근본의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되셨고,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모두 아들의 격이 되셨다 했지요. 따라서 성령 하나님의 가장 근본적인 직위는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이미 창세기 강해 세 번째에서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갈라디아서 4:6의 아들의 영은 바로 성령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가리킨다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아들의 영이라 하신 데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6 앞부분에 "너희가 아들인고로" 했지요. 이는 믿는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12에도 보면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지요. 그런데 사실 하나님을 온전히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기 위해서는 온 영을 이루어 참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온 영을 이룬 참 자녀들은 당당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친근하게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도 있지요. 이처럼 우리가 온 영을 이루어 참 아들, 딸이 되기까지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로 양육해 주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깨우치고 이해하며 닮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요. 바로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을 참 아들로 양육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초점을 두어 성령을 아들의 영이라 칭한 것입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의 세계에 필요한 영적인 존재들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근본의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하신 부분에서 내용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은 이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각의 사명과 역할을 잘 알게 되셨을 줄로 압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태초 이전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얼마나 성실하게 많은 일을 하시는지요.
다윗은 시편 36:5에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다고 찬송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시편 121:4에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했지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오랜 세월 변함없는 성실함으로 각각의 사명과 역할을 감당해 오셨습니다. 오직 참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일념으로 그리하셨지요.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마음의 할례를 변함없이 성실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참 자녀로 꼭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10-20 오전 2:09:28 Posted
2013-04-02 오전 11:46:0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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