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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0)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1:1 등록일자 2009.09.18
창세기 강해 열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까지는 성부 하나님을 일컫는 명칭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여호와, 여호와의 신, 지혜로운 영, 지혜의 신,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 영광의 영, 일곱 영까지 말씀드렸지요. 이밖에 아버지 하나님, 아바 아버지도 성부 하나님을 일컫는 명칭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명칭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상황에 따라서 성부 하나님의 속성이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함이라 했지요. 또한 성부 하나님께서는 영의 분리를 통해 오랜 세월 다양한 모습으로 무수히 많은 일들을 해 오셨습니다.
성자, 성령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체로서뿐만 아니라 영의 분리를 통해 창세 이후 오늘날까지 무수히 많은 일을 해 오셨지요. 따라서 성자, 성령 하나님을 일컫는 명칭도 성경에는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성자 하나님을 일컫는 명칭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성자 하나님을 일컫는 명칭으로는 주(主), 주의 신, 주의 영,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영, 예수의 영 등이 있습니다. 이외에 비유적인 명칭들도 있지요.
예를 들어, 고전 10:4의 반석, 계 2:17의 흰 돌, 요 1:36의 어린 양 등입니다. 그리고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말씀하실 때 늘 인자(人子)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가리키는 이런 비유적인 명칭들도 있다는 것은 참고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제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는 명칭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구세주의 사명을 띠고 근본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시점에 예수님으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요. 여러분들도 각자 이름의 뜻이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에는 마 1:21에 나온 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 담겨 있지요. 이렇게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시고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구세주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이며 히브리어로 메시아이지요. 원래 메시아와 그리스도는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왕이나 제사장을 임명할 때 머리에 거룩한 기름을 부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세운 왕이 아닌 참된 왕이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바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구세주, 곧 메시아(그리스도)가 오시길 기다렸지요.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구세주로 믿습니다. 구세주를 줄여서 그냥 주(主)라고도 하며 존칭을 붙이면 주님이 됩니다. 따라서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 믿는 사람들이 주(主)라고 표현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요.
그런데 구약 시대에는 조금 다릅니다. 그때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고, 예수님께서도 구세주가 되시기 전이지요. 따라서 구약 성경에 나오는 주(主)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부는 아니고 대부분 그렇다는 뜻입니다. 주 여호와라는 표현이 구약 성경에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시 71:16에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의 곧 주의 의만 진술하겠나이다" 했지요. 여기에 나온 주는 모두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과 밝히 교통함으로 구세주가 오실 것을 안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시 110:1에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했지요.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 했습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차 구세주가 되실 성자 하나님께 말씀하신 내용을 다윗이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부분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가 다윗의 계보에서 나온다 해도 결코 육의 혈통을 받아 나오는 다윗의 자손이 아님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바로 막 12:35-37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곧 여호와께서 구세주가 되실 성자 하나님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셨지요. 다윗은 구약 시대의 사람이지만 성령의 감동을 입어 그리스도에 대해 이처럼 밝히 알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 성경에 나오는 주(主)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도 있고,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주(主) 뒤에 신(神)을 붙인 주의 신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신(神)을 붙인 것은 형상에 중점을 둔 표현이고 주로 구약 시대에 쓰인 표현이라 했지요. 주의 신이란 단어도 구약에만 나옵니다. 그리고 구약 시대의 주(主)는 대부분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킨다 했지요. 따라서 주의 신도 대부분 성부 하나님의 분체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다윗의 경우처럼 장차 그리스도로 오실 구세주에 대해 미리 아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주의 신"이라는 같은 표현이라도 성자 하나님의 분체임을 아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주의 영(靈)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영(靈)을 붙인 것은 마음에 중점을 둔 표현이고 주로 신약 시대에 쓰인 표현이라 했습니다. 신약 시대의 주(主)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지요. 따라서 주의 영은 주님의 분체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행 8:39에 보면 빌립 집사가 주의 영에게 인도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했지요. 동일한 주님의 분체가 역사하셨다 해도 구약 시대에는 주의 신이라 했고, 신약 시대에는 주의 영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딱 한 곳에 주의 영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시 104:30에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이 나오지요. 바로 하나님께서 첫 사람을 창조하실 때 주의 영을 보내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주의 영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지요. 이 말씀은 창 2:7의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신 말씀과 짝을 이룹니다. 첫 사람 아담이 생령으로 창조될 때 주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영(靈)이 붙을 때는 마음에 중점을 둔 것이라 했지요. 따라서 아담에게 주의 영이 임했다는 것은 아담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곧 진리의 마음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이라 할지라도 여기서는 형상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중점을 두어 표현한 것이지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또 다른 호칭으로는 그리스도의 영과 예수의 영이 있습니다. 이 둘도 주님의 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지요. 여러분은 이제 그리스도와 예수의 차이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과 예수의 영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되지요.
먼저 롬 8:9 후반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했습니다. 주님의 분체를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할 때는 그리스도라는 직임(職任)을 강조한 경우입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신 분 바로 이런 직임을 가진 분으로서의 주님의 마음이 곧 그리스도의 영이지요.
여러분이 처음 주님을 믿을 때는 이처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입술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영접합니다. 바로 이때는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임하게 되지요. 그런데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정녕 나의 구세주시라는 신앙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는 것과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하는 것 중 어떤 고백이 더 진한 신앙 고백 같은가요? 후자(後者)이지요. 신앙이 초보일 때는, 주님을 그리스도라는 직임을 가진 분으로만 느끼지만 신앙이 깊어질수록 나의 주님으로 모시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중심에 모시는 사람이 주님의 역사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영이 아닌 주의 영으로서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영은 어떤 경우에 사용한 표현일까요? 행 16:7에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했습니다. 여기에 나온 예수의 영도 주 예수님의 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라고만 하면 십자가를 지시기 전이지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는 반드시 그리스도 또는 주를 붙인다 했습니다.
그러면 이 부분은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 여정을 기록한 것인데, 왜 예수의 영이란 표현이 나왔을까요? 이때, 예수의 영이라 표현한 데에는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마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수님으로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는 하늘의 영광을 가진 성자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피조물과 같은 인자(人子)이셨지요. 이 자체만으로도 예수님은 엄청난 희생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악한 피조물들에 의해 많은 고초를 받으시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요. 이처럼 예수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애매히 많은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수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새로운 전도지를 개척하려 할 때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지요. 사도 바울은, 새로운 전도지에 가면 또 어떤 환난과 고난을 당할지 알 수 없으나 복음 전파를 위해서라면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마음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사도 바울에게 주님의 마음은 많은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의 마음으로서 와 닿았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이러한 사도 바울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에 예수의 영이라 표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정확하게 잘 표현했지요. 예수 그리스도 또는 주 예수라고만 해도 되는데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즐겨 썼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직임을 가진 분이심과 우리의 주가 되심을 동시에 강조한 것이지요.

성도 여러분, 롬 1:4에 보면 성결의 영이 나옵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했지요. 이 말씀에 나온 대로 성결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 바로 우리 주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셨으므로 원죄가 없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준행하셨기에 자범죄도 없으시지요. 예수님께서 이처럼 죄가 전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영계의 법칙은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만일 예수님께 조금이라도 죄가 있었다면 그대로 사망에 매여 계셔야 하며 부활하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만세 전에 감추인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죽임 당하셨지만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지요. 히 7:26에는 이러한 주님에 대해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의 역사를 받을 때, 죄가 전혀 없으신 주님의 마음이 와 닿아서 성결의 영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곧 주님의 명칭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남은 한 분, 성령 하나님의 명칭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본체를 성령님이라고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성령님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처럼 영을 분리해 내실 수 있지요. 신약 시대를 성령 시대라고 할 만큼 성령님은 신약 시대에 활발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도 아버지 하나님을 도와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영을 분리하여 구약 시대에는 성신으로, 신약 시대에는 성령으로 일하셨지요.
예를 들어 구약 성경 대상 12:18에 보면 "때에 성신이 삼십 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했습니다. 신약 성경 계 4:2에는 "(사도 요한이)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라고 했지요. 구약 시대에는 성신의 감동을 받았고,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의 마음이 동일하게 전달됐다 해도 구약과 신약은 전달 방식이 다릅니다. 구약 시대의 성신은 각 사람의 외부에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반면 신약 시대의 성령은 각 사람의 내부에서 감동을 주시지요. 또한 성신의 감동은 지속적이지 않고 일회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에만 감동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반면 성령의 감동은 지속적일 수 있습니다. 성령이 마음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의 소욕을 좇기만 하면 항상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지요.
성신과 성령의 이러한 차이를 안다면 우리 목회자들이 축도를 하거나 세례를 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해야 할까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해야 할까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맞겠지요? 지금은 신약 시대요, 성령 시대인데, 성신의 이름으로라고 한다면 성령님이 너무나 멀게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신(神)과 영(靈)의 차이를 아십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성신이라 표현한다면 구약 시대처럼 성령님을 다만 하나의 신적인 존재로만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이 우리 마음 안에 계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성령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지요.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영으로 우리 가까이, 바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구약 시대에는 외적으로 역사하시던 성신이 신약 시대에는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 안에 들어올 수 있게 됐을까요? 창 6:3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말씀하셨지요. 바로 사람들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신다 했습니다.
여기서 영적으로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육체의 영적인 의미는 행함으로 나타난 죄의 총칭입니다. 행함으로 짓는 죄들 곧, 살인, 폭행, 도둑질, 사기, 간음 등을 총칭하여 육체라 합니다. 각 항목들은 육체의 일이라 하구요. 참고로, 영적으로 육신은 죄성이 몸과 결합된 것이지요. 행함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마음 안에 담겨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행함으로 나타날 수 있는 죄성이 바로 육신입니다. 예를 들어 미움, 시기, 질투, 거짓, 간사함, 교만, 혈기, 욕심 등을 총칭하여 육신이라 합니다. 그리고 각 항목들을 육신의 일이라 하지요.
구약 시대는 율법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준행하는 사람은 육체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복을 주셨지요. 그러나 율법을 준행한다 해도 마음에서 죄성을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셨지요. 모든 인류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믿음으로 사함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예수님의 의로운 한 행동을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영계의 법에 따라 더 이상 죄인이 아니요, 의인이 됩니다. 이처럼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거룩하신 성령도 임하실 수 있지요.
이에 행 2:38에는 베드로 사도가 성령받는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했지요.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먼저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이 임합니다. 이때 모든 믿는 사람에게 임하는 성령은 성령 하나님의 분체라 했지요. 성령님은 무수한 영의 분리를 하여 모든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임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이미 장차 이러한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케 하셨습니다.

먼저 요엘 2:28 전반절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하셨지요.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 날 이 말씀이 처음으로 실현되었습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던 주님의 제자들과 120명에게 성령이 동시에 뜨겁게 임했던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 사도는 행 2:17에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하며 그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증거 하지요.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한 부분에는 신(神)이 아닌 영(靈)으로 표현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한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세에 부어 주리라 하신 신(神)과 영(靈)은 모두 성령을 가리키지요.
구약 성경 에스겔서에도 하나님께서 장차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겔 11:19-20에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말씀이 겔 36:26-27에 한 번 더 나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했습니다.
여기에는 새 영도 나오고 새 신도 나오지요. 모두 장차 임할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장차 임할 성령의 역사에 대해 알았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죄로 물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개간하는 역사를 할 것과 하나님의 율례를 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할 것을 알았지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마음으로 느끼므로 새 영이라고도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겔 자신도 아직 성령을 받은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여전히 신적인 존재로도 느껴지는 상황에서 새 신이라는 표현도 같이 나오고 있지요.

이 에스겔서에도 성령의 역할이 나왔는데 성령의 역할과 속성에 따른 성령의 명칭들은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도님들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마음을 계속해서 더욱 부드럽게 개간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09-21 오후 11:26:13 Posted
2012-03-24 오전 3:29:0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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