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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1:1 등록일자 2009.06.26
오늘부터 창세기 강해를 다시 시작 합니다. 지난 1차 강해는 2000년 12월 1일부터 약 70개월 동안 230회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1차 강해를 시작한 지 9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말씀을 다시 듣고 싶어 하시고, 전 세계 GCN 시청자들에게도 창세기의 깊은 내용을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에, 1차 강해의 내용을 정리하고 보충하면서 2차 강해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사실, 지난 1차 강해를 그처럼 오랫동안 설교해야 했던 이유는 창세기에 영적으로 깊은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1-2절, 이 두 절을 설교하는 데에만 해도 무려 20시간이 걸렸습니다.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했는데, "태초"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기 시작한 그 시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조" 이전에 있었던 일들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영의 세계를 너무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은 뉴스에도 종종 나옵니다. 얼마 전에는 에덴동산이 아프리카 남서부에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보도되었는데, 예전에는 에덴동산이 중동에 있었다고 하더니 이제는 아프리카에 있었다고 합니다. 또, 세계 곳곳에서 자주 목격되는 UFO의 정체에 대한 의견도 분분합니다. UFO는 고도의 문명을 가진 외계 생물체가 타고 있고, 그들이 인류를 공격할 수도 있다며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창세기 강해를 들으신 분들은 이런 세상의 주장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원하게 설명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창세기 강해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태초 이전의 세계부터 밝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시며,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심을 확실한 증거와 함께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들은 방송과 책자로 제작되어 전 세계에 전파될 것이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들은 성도님들에게도 영적으로 매우 유익합니다.
요한일서 2장 13절 전반에 보면,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했습니다. 창세기 강해를 통해 태초부터 계신 분인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면, 믿음이 더욱 신속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장성한 믿음의 분량인 "아비의 믿음"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깊은 내용까지 알려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모함으로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해 깊이 알아갈수록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사귐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창세기에 대하여

1) 창세기의 저자와 기록 연대
창세기의 저자는 누구일까요? 디모데후서 3장 16절 전반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한 대로, 창세기의 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이 내용을 받아서 기록한 사람은 모세입니다. 물론, 창세기에는 모세가 이것을 기록했다는 표현이 안 나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민수기를 모세오경이라 하여 모세가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동안, 시내산의 40일 금식 기도 등을 통해 하나님과 깊이 교통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비롯한 모든 계명과 율례, 성막의 식양 등을 받았습니다. 보통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광야 생활을 했던 시기를 대략 B.C. 1,450-1,410년경으로 추정합니다. 창세기도 그 시기, 곧 지금으로부터 약 3,400여 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2) 창세기의 구조와 주제
창세기의 구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 1부는 1장부터 11장까지인데, 여기에는 창조 역사와 인류의 타락, 노아 홍수와 바벨탑 사건이 나옵니다. 제 2부는 12장부터 마지막 장인 50장까지입니다. 여기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일대기가 나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러한 내용의 창세기를 통해 선포하시려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창조주시고, 만유의 통치자시며 인류 역사의 주관자이시다"는 것입니다. 시편 96편 10절에 보면,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할지라 저가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리라 할지로다"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 한낱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에, 로마서 1장 21-23절에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했습니다. 또한 로마서 1장 25절에는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했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 때 가장 행복하며, 결국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사상과 이론이 이 세상에 만연한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이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한 예로, 로마서 1장 20절에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했습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자연 만물만 보고도 창조주의 존재를 인식하고, 마음으로부터 경외하는 삶을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선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세상 지식과 이론들을 앞세워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라도 그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으로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이들 앞에 수없이 나타내 보이십니다. 그러한 일들을 보고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게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고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오늘도 쉼 없이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를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도 창세기 강해를 통해 믿음이 더해지며,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고, 더욱 사랑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에 참으로 합당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3) 창세기 강해를 전할 때 유의할 점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창조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조" 이전에 대해서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수 시간 동안은 "창조" 이전의 일들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는 창조 이전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읽어도 깨닫지 못하여, 알지 못할 뿐입니다.
저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에 대해 알기를 원하여, 무수한 금식과 기도를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1980년대부터 창세기를 풀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깊고 어려워서 그때는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도가 되어서야 그 내용을 설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이 참임을 확증할 수 있는 창조의 권능을 폭발적으로 나타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제는 성도님들 대부분이 영의 공간을 체험하여 아시기 때문에 영의 세계를 설명하기도 더 쉬워졌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분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 설교를 통해 들으신 깊은 영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는 삼가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소화하기 쉬운 음식을 주어야지, 단단한 음식을 주면 자칫 소화를 못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보면, 사도 바울도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했습니다. 믿음이 어린 성도들에게는 우선 "십자가의 도"나 "믿음의 분량" 같은 말씀을 심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들을 통해, 우선 믿음이 성장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감당하기도 어려운 깊은 영의 말씀을 먹인다면, 오히려 그 영혼에게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2. 천지 창조 이전 태초의 하나님

1절에 나오는 "태초"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시작하신 시점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1절에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여, "태초"라는 시점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태초"는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보다 훨씬 앞선 시점입니다. 천지 창조 이전, 즉 사람의 시간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득히 오래전의 시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창조 이전의 태초부터 스스로 계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에 대해 설명해 주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완전하신 분이기에 누가 하나님을 낳은 것이 아니며, 원래부터 스스로 계셨습니다. 그러면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셨던 하나님은 과연 어떤 모습이셨을까요? 창세기 1장 27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첫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사람과 같은 모습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계셨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사람과 같은 모습이 아니셨는데, 어느 시점에 이르러 사람과 같은 모습이 되셨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3. 근본의 하나님

그러면 사람과 같은 형상을 입기 전의 모습, 곧 "근본의 하나님"의 모습은 어떠셨을까요? 끝없이 넓은 우주에 아름다운 빛들이 가득한데, 그 빛들이 물결치듯 넘실거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물결치는 빛 속에서 나오는 웅장하면서도 맑고 청아한 소리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근본의 하나님의 모습은 이와 비슷합니다.
정리해 보면, 근본의 하나님은 소리를 머금은 빛의 형태로 근본의 우주를 가득 채우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근본의 우주"란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와 다릅니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는 육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근본의 우주는 육의 세계가 아니며, 영의 세계입니다. 근본의 하나님께서 홀로 계실 때는 오직 영의 세계만 있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가 언제 생겼는지는 다음 시간에 설명할 예정입니다.

근본의 하나님은 크게 두 요소, 곧 "빛"과 "소리"로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근본의 빛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근본의 빛은 어떤 형태는 없으되, 굳이 표현하자면 마치 흐르는 물결과 같습니다. 빛의 물결이 온 우주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근본의 빛은 무지갯빛이 감돌아 아름다우며, 눈부시게 밝고 찬란합니다. 만약 수많은 종류의 보석들을 한 곳에 가득 쌓아 놓고 강렬한 빛을 비춘다면, 가지각색의 빛들이 보석들로부터 반사되어 나올 것입니다. 그 빛들은 어떤 형태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마치 흐르는 물결처럼 빛의 물결이 넘실거리게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 중에서 이러한 근본의 빛과 가장 유사한 것은 "오로라"입니다. "오로라"는 "극광" 혹은 "북광(北光)"이라고도 하며, "주로 극지방에서 초고층 대기 중에 나타나는 발광(發光) 현상"입니다. 태양으로부터의 대전 입자(帶電粒子)가 극지 상공의 대기를 이온화하여 일어나는 현상으로, 빨강ㆍ파랑ㆍ노랑ㆍ연두ㆍ분홍 등의 색채를 보입니다. 마치 아름다운 빛깔의 엷은 커튼을 하늘에 쳐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빛이 물결처럼 하늘에 흐르는 듯도 합니다. 그 장면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이 오로라를 실제로 본 사람들은 평생 그것을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근본의 빛은 오로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아름답고 찬란한 빛을 냅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여러 빛들이 동시에 뿜어져 나오되, 그 빛들이 하나로 부드럽게 어우러져 온 우주에 물결치듯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5절 후반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에서 "빛"은 영적인 빛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비진리인 어둠과 상반된 개념으로서, 진리, 선, 사랑이 영적인 빛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영적인 의미의 빛인 동시에, 근본의 모습 자체가 "빛"이셨습니다.

근본의 하나님은 빛 속에 "소리"를 머금고 계셨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바람결에 소리가 함께 실려 오는 것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멀리 있는 파도의 소리가 은은히 실려 옵니다. 숲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함께 실려 오기도 합니다. 바람 속에 소리가 실려 오는 것처럼, 근본의 하나님은 빛 속에 소리를 머금고 계셨습니다. 이 근본의 소리는 다른 어느 곳에서 실려 온 것이 아니라, 근본의 빛 자체에서 울려났습니다. 그리고 바람에 소리가 실려 바람이 가는 곳에 소리도 퍼지듯이, 근본의 소리도 근본의 빛과 함께 온 우주를 감싸며 퍼져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어 보신 분들은 아마 영원토록 그 소리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몇 차례 들어 보았는데, 우렁차면서도 너무도 맑고 깨끗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15절에는 주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 같다 했습니다. 그만큼 주님의 음성이 웅장하면서 맑고 깨끗하다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는 너무나 맑고 투명하며, 감미롭고 부드러우면서도 온 우주를 울릴 만큼 웅장한 소리입니다. 이 소리를 굳이 이 땅의 소리로 표현하자면, 맑고 깨끗한 수정과 같은 보석이 서로 부딪쳤을 때 울려나는 소리나 얇고 투명한 유리가 서로 부딪히면서 울려나는 소리와 유사합니다.
혹시 겨우내 얼었던 호수의 얼음이 봄이 되면서 녹아 갈라지며 내는 소리를 들어 보신 분이라면, 우렁차면서도 맑고 깨끗한 소리가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극지방에서도, 오랜 세월 얼어 있던 얼음들이 녹아 갈라질 때가 있는데, 그때 울려나는 소리는 너무나 크고 맑고 깨끗해서 매우 먼 곳까지 퍼진다고 합니다. 물론, 근본의 하나님이 빛 가운데 머금으셨던 소리는 이 세상의 어떤 소리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조금이나마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세상의 소리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리"가 바로 요한복음 1장 1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는데, 여기서 태초에 계셨던 "말씀"이 바로 근본의 빛 속에서 울려나는 "근본의 소리"를 뜻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소리"라는 형태보다 소리의 본질인 "말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내용이라면, "하나님"은 그 내용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은 각 사람을 부르는 호칭일 뿐입니다. 그 이름이 그 사람 자체는 아닙니다. 이름이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이름만 같다고 사람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각 사람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말씀"이요, 그 말씀은 빛과 소리라는 형태로 근본의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잠깐 영적인 빛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비진리, 악, 죄가 영적인 어둠이라면, 영적인 빛은 진리, 선, 사랑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근본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머금은 소리는 "말씀"이라 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은 진리와 선과 사랑 자체로서, 영적인 빛과 속성이 같습니다. 이처럼 진리, 선, 사랑 자체인 하나님의 속성을 "영"이라 합니다. 이러한 영의 속성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그 형상도 영이십니다. 즉 우리 육의 눈에 보이는 육의 형상이 아닌, 영으로 이루어진 형상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라 하신 것입니다.
근본의 하나님은 영으로서 소리를 머금은 빛의 모습으로 근본의 우주에 널리 퍼져 계셨습니다. 그 세월은 육의 시간의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원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시간 동안 홀로 계시던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이 넓고 광활한 우주와 내 마음을 알아 나와 서로 사랑을 주고받음으로, 내 마음의 감동을 그에게 전달해 줄 때 그도 그것을 받아 그의 마음을 내게 전달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감동이 될까? 이런 마음을 품으셨습니다. 우주의 모든 것을 함께 느끼며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또 다른 존재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신성과 인성 두 가지를 다 가지고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홀로 누리시기보다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역사(役事)를 시작할 마음을 품게 되신 것입니다. 그 새로운 역사가 바로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입니다. 그리고 인간 경작의 터전이 되는 천지 창조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무엇인지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근본 모습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지갯빛이 감도는 아름다운 빛 가운데 소리, 곧 말씀을 머금은 채로 온 우주에 널리 퍼져 계셨다 했습니다. 이처럼 홀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계획하신 이유는 바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받으시기 위해, 또한 사랑을 주시기 위해 인간 경작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받기보다 먼저 무한한 사랑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모든 역사도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하나하나 이뤄졌습니다.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는 태어날 아기를 위해 할 수만 있다면 가장 좋은 것들을 준비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사랑을 주고받을 참 자녀를 얻으시기 위해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천지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항상 기억하고 중심에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심으로 하나님께 행복과 감동을 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06-29 오후 11:11:51 Posted
2018-12-04 오후 2:04:0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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