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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모함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룻1:15-18 등록일자 2007.08.12
오늘은 참된 사모함이 무엇이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예루살렘을 사모함이 온전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증거하겠습니다.


사모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간절히 바라고 원한다는 말입니다. 진리를 아는 여러분은 대부분 가장 아름다운 천국인 “새예루살렘”을 사모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영을 사모하며 새예루살렘을 사모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한 사모함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참된 사모함은 마음 중심의 고백과 이에 따른 행함이 증거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면 새예루살렘을 사모함이 온전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변개함이 없어야 합니다

변개함이란 마음에 어떤 것을 정했다가도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정한 것을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것을 간절히 바라다가도 세월이 지나고 상황이 변하면 마음이 쉽게 바뀌는 것을 봅니다. 영의 것을 사모하는 마음은 감정적이거나 즉흥적이어서는 안 되며, 마음에 정하고 하나님 앞에 입술로 낸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수련회나 특별한 시간을 통해 은혜를 받으면 “이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도도 쉬지 않겠습니다. 세상 것들을 버리겠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은혜가 식어지고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때가 있지요. 세상 것이 좋아 보이고 “노력한다고 정말 새예루살렘에 갈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버려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하면서 결심한 것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고 믿음이 있으면서도 한번 정한 마음을 변개하거나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만드는 말과 행동은 어려움을 당케 하며, 사단의 송사를 받게 되고 지킴받지 못합니다.

영의 사람들을 사모할 때도 육으로가 아닌 영으로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목자를 왜 붙좇고 사랑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 주고 기사와 표적을 보여 주며, 믿음을 심어 줘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기 때문이지요. 또 목자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입게 되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적인 이유로 붙좇는다면 충만할 때뿐 아니라 혹여 충만함이 좀 떨어지더라도 그럴수록 더 나와서 붙좇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영적인 붙좇음과 영을 사모하는 마음이 변개함이 없어야 하며, 사모함이 날이 갈수록 승해질 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룻은 남편이 죽고 살아갈 길이 막막해졌을 때도 홀로 남은 시어머니를 진실로 사랑했기에 끝까지 함께하며 섬겼습니다. 고향에 남아 새 남편을 얻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겠지만 한번 정한 마음을 변개치 않고 하나님과 시어머니를 섬기고자 먼 이스라엘 땅까지 와서 최선을 다해 시어머니를 공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심히 기뻐하셔서 룻에게 훌륭한 남편을 주어 자녀를 낳고 시어머니와 행복한 여생을 보내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영적으로도 룻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게 되었고, 천국에서도 손꼽히는 존귀한 자리에 들어가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룻의 이야기는 하나님에 대해, 영의 것을 사모함에 있어서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해야 할 것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한번 선한 것을 택했으면 하나님과 주님과 목자에 대한 마음도, 신앙에 대한 결단도 끝까지 변개치 않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유익에 따라 결심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온전하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러면 “새예루살렘을 사모한다.”는 고백이 참이 되고 신속하게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과 천국 소망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여러분은 은혜를 받으면 변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며 작정한 대로, 고백한 대로 지키고 싶어합니다. 그러다가 작정한 대로 안 되면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민망해하다가 이것이 자꾸 반복되면 “나는 왜 이럴까?” 하며 자신에게 실망하여 힘이 빠지기도 하지요.

이때 낙심치 않고 결심한 것을 변개치 않으려면 여러분의 마음을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과 천국 소망으로 가득 채워 나가야 합니다. 지옥이 두렵고 징계가 두려워 억지로 세상 것을 눌러 참는다고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란 그냥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로 반드시 채워지게 되므로 진리로, 영의 것으로 계속 채우지 않으면 결국 육의 것, 세상 것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사모함이 온전하게 되려면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천국 소망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새긴다는 것은 말씀을 경청하여 듣고 성경을 묵상하며 그것을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에 졸거나 친구와 대화하며 핸드폰이나 다른 것에 신경을 쓰면 말씀이 흘러나갑니다. 그럴 때는 친구들과 떨어져 앉거나 성경 외에 다른 것은 놓지 않는 등 스스로도 노력을 해야 하지요.

학생들의 경우는 성경 한 장씩 읽고 한 절씩 암송하는 것이 쉽습니다. 공부를 시작할 때 잠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께서 머리도 맑게 해 주시고 위로부터 지혜와 집중력을 더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읽으며 묵상해도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가 따라야 하며, 그럴 때 자신의 모습이 발견되고 깨달아지며 진리로 변화될 수 있는 힘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으로, 천국 소망을 마음에 새기려면 “내가 지금 하는 모든 것들을 천국에서 어떻게 받게 될 것인지”를 늘 사모하며 소망하면 됩니다.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전도하는 것은 물론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가정에서 섬기는 것도 결국 학생의 본분을 다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순간순간 행하는 것이 다 하늘에 상급으로 쌓이게 된다는 소망으로 행하면 되는 것이지요.

저는 아름다운 보석이나 경치를 보면 “세상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해 두신 천국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소망으로 행복해집니다. 제게 주어진 일들이 육으로는 고되고 힘들다 해도 아버지께서 내게 허락하신 시간이며 사명이기에 너무나 소중하게 감당하지요.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기쁘고 “이것을 잘 감당할 때 어떤 상급을 주실까?” 하며 하늘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최선을 다합니다.

이처럼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과 천국 소망으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나간다면 세상 것이 미혹한다 해도 말씀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또한 더 좋은 천국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므로 세상의 헛된 것을 깨달아 버릴 수 있으며 마침내 여러분이 사모하는 새예루살렘이 온전히 주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3. 어떤 상황에서도 모두와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14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혈기내고 욕하며 싸우는 것이 비진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크게 드러내어 싸우지 않아도 분야분야 화평이 깨진다면 나름대로 자기 의와 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여러분은 어려서부터 진리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 진리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자 하는데 자칫하면 자기적인 의와 틀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이 있으면 “내 생각이 옳다.” 하며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판단 정죄하거나 힘들게 하는 일이 생깁니다. 부모님, 교사, 어른들을 볼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안 지키시면서 우리에게만 잘하라 하시나?” 하고 불편해하기도 합니다.

믿음이 적고 진리 안에 살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가르치는 듯한 말과 태도는 상대를 불편케 하고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회의나 어떤 일을 할 때도 내 생각이 옳고 더 좋아 보여 억지로 주장하게 되면 서로 불편해지지요. 그러나 자기 의견이 더 낫다 해도 비진리가 아니라면 다수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좀 더디 돌아가게 되더라도 상대의 믿음과 입장에 맞춰 주면 모든 사람과 화평함을 좇을 수 있습니다.

또한 진리는 “이것이 옳다, 저것은 잘못이다.” 분별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진리를 행하고 잘못을 범하는 사람이라 해도 이해해 주고 참아 주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식으로만 진리를 쌓으면 상대를 힘들게 하고 화평을 깨뜨리지만, 그 진리를 마음에 쌓을 때는 진리 안에서 주변 사람들을 평안하고 행복하게 해 줍니다. 이처럼 온유함과 덕으로 큰 마음을 이뤄서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는 이들을 품을 때 비로소 새예루살렘에 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경우는 내 편에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상대편에서 화평을 깨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이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핍박하는 경우이지요. 이때도 감정적으로 행동하여 불필요한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선과 사랑의 지혜를 받으면 가족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믿음이 적은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서로 간에 화평하지 못한 일이 생긴다면 “저들이 진리 안에 행하지 못하는 것이니 내 잘못이 아니라”고만 할 것이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 모든 사람에게 덕과 은혜를 끼치는 것입니다.

자기 의와 틀이 있는 사람은 자신은 진리로 행한다고 하지만 남들이 볼 때는 뭔가 이상해 보이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지요. 또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지므로 주변에서 소외되는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마음에서 깨우치므로 진리 안에서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수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행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증거된 말씀들을 항상 묵상하면서 마음에 온전히 이루며 변함없이 믿음의 길을 달려감으로 꼭 새예루살렘에 들어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08-13 오후 10:54:20 Posted
2018-09-04 오전 11:42:0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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