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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막 9:21-24 등록일자 2020.04.26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나 가족의 질병으로 고통받기도 합니다. 사기를 당하거나, 보증을 잘못 서서 물질의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요. 자녀들이 삐뚤어지거나 배우자가 본분을 다하지 않으므로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울어도 소용없고, 참는다고 해결되지 않으며 돈으로도 어찌할 수 없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문에는 ‘아들의 문제’로 예수님께 나아 온 한 아버지가 단번에 문제를 해결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만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다가 내려오셨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가 아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지요. 그 아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심한 발작을 하고 땅에 넘어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귀신 들려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며, 간질까지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번 발작이 일어나면 불에도, 물에도 넘어져서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지요. 이런 아들로 인해 아비는 항상 불안과 근심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된 것입니다. “예수라는 분이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소경의 눈도 뜨게 하며,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귀신을 내쫓아 주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렸다.” 이 소문은 아비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능력 있는 분이라면 내 아들을 고쳐 줄 수 있을지도 몰라’ 하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지요.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간청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고백일까요? 그가 진정 믿음으로 나왔다면 “예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사오니 불쌍한 내 아들을 고쳐 주옵소서”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가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고, 결국 그는 아들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질병이나 사업의 문제든, 가정의 문제든, 사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도 믿음으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아이의 아비가 예수님께 “내가 믿나이다” 했듯이 우리도 주님께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도 처음에는 믿음의 고백을 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도와주옵소서”라고 소극적으로 도움을 구했을 뿐입니다. 이에 대해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으로 믿음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내가 믿나이다!” 라는 긍정의 고백이 나왔지요.
그런데 이 고백도 믿어지는 믿음이 있어 나온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확고하게 말씀하시니 그 권세 앞에 영적으로 압도당한 결과이지요. 예수님의 말씀, 곧 빛의 권세로 어둠이 떠나고, 그 아비의 부정적인 생각도 제어가 되니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이 아비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에 그것을 믿는 선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식적인 믿음은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님들도 최소한 지식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면 항상 긍정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입술의 고백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롬 10:10).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면 됐지, 왜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구원도 응답도 ‘믿음’으로 받지만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이 ‘행함’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은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 위한 초석이요, 최소한의 행함입니다.

그런데 성도 중에는 혹 응답을 받기 위해 기도하면서도 부정적인 고백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치료받아도 나는 안 됩니다.” “내 사업터 문제는 너무 얽히고설켜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내 가족은 너무너무 강퍅해서 전도가 안 됩니다.” “못해요. 안 돼요. 어려워요. 힘들어요. 될까요? 할 수 있을까요?” 이것도 모두 부정적인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분들에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막 10:27). 하나님께서도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시지요(렘 32:27).
이러한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될까요? 할 수 있을까요? 안 돼요. 어려워요.”라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하지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최소한 머리로나마 알고 있다면 입술로도 고백해야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웬만하면 믿음으로 고백하겠는데 내 문제는 너무 커서 안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신가요? 그러면 하나님은 작은 문제는 해결하시고, 큰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신단 말입니까? 아니지요. 문제가 크든 작든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입술의 부정적인 고백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능력이 작은 하나님으로 만든다면 이는 하나님을 서운케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그 불신의 말을 빌미로 부정적인 생각, 의심의 생각이 더 자라게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고백이 아직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지 않는다 해도 긍정적인 고백을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입술로 낸 말은 사라지지 않고 씨앗이 되어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이 씨앗이 되어 결국 ‘온전한 믿음’이라는 열매로 맺힐 수 있습니다.

둘째, 믿어지는 믿음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의 아비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한 후 이어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믿나이다!” 했는데 왜 이어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했을까요? 아비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 앞에 간절한 심정으로 “내가 믿나이다” 했지만, 솔직히 자신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음을 시인한 것입니다.
지금 아비의 심정을 보면 너무나 절박한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들을 고쳐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는 고쳐 주실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런 능력이 자기 아들에게 베풀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믿어지는 믿음을 내보여야 함을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준비한 믿음은 너무 작다는 실상이 이제 파악된 것이지요.
비유를 들면, 아들의 병을 고칠 약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하다가 겨우 그 약이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약을 사려고 하니 준비한 약값이 턱없이 부족했지요. 아버지는 아들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습니다. 내 아들에게 이 약이 꼭 필요하니 도와달라고 애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엎드려 빌어서라도 간절히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는 아비의 심정, 바로 이 아비의 갈망이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라는 표현으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아비의 마음을 다 읽으셨습니다. 그가 아들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 얼마나 애타는 심정으로 찾아왔는지, 얼마나 힘쓰고 애썼는지, 그의 성품도, 정성된 마음도, 간절함도, 진실함과 겸비함도 다 읽으셨지요. 결국 예수님의 마음이 움직였고, 그의 아들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따라서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이 아비처럼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정성을 내보여야 합니다. 물론, 먼저는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죄의 담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감동하실 만한 정성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보이면 ‘믿어지는 믿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보면 ‘믿음의 분량’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다 했습니다. 믿어지는 믿음, 영적인 믿음은 스스로 가질 수 없고,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질 수 있습니다.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생기면 응답의 확신이 오지요. 육적인 환경에 상관없이 ‘된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며 누가 뭐라고 해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셋째, 응답받을 때까지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아이의 아비도 예수님께 “소리 질러”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앞에 계신데 소리 질러 간구했다는 것은 그만큼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지요. 이것은 능치 못함 없는 믿음을 갖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행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6~37)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부르짖어 기도하되 응답받을 때까지,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는 얼마나 힘쓰고 애쓰셨던지 땀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다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큰소리로 “아버지여 나의 영혼을 받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지요.

우리도 응답받을 때까지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처음에 믿음을 가지고 시작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하지요. 불가능한 일을 응답받기 원한다면 그만한 인내와 수고로 공의를 쌓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부르짖어 기도해 나가면 점점 응답받을 그릇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네가 응답을 받으려면 이것을 회개해야 한다. 이렇게 행해야 한다. 이렇게 심어야 한다.”는 성령의 음성이나 주관을 받게 되지요.
변함없이 부르짖어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성령께서 응답의 길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음성과 주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믿어지는 믿음’을 부어 주십니다. 반면, 성령의 주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해도 응답의 그릇이 준비되지 않으니 믿어지는 믿음도 오지 않지요. 그러므로 부르짖어 기도하며 그릇을 잘 준비하심으로 응답과 축복으로 영광 돌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04-29 오후 1:26:59 Posted
2020-08-03 오후 1:35:5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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