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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의와 틀을 깨뜨리자 (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사 55:8-9 등록일자 2020.03.15
오늘은 자기적인 의와 틀의 개념과, 세상적인 의와 틀 및 진리를 바탕으로 형성된 의와 틀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자기적인 의

의란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원래 의의 일반적인 뜻은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바른 도리입니다. 또 진리 안에서의 의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정직하게 정의롭게 행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사랑하십니다(시 11:7). 그런데 지금 설명하고자 하는 의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가 아닙니다. 바로 자기 기준에서 맞다, 옳다고 주장하는 자기적인 의를 말하지요.
이사야 55장 8~9절에 하나님께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말씀하십니다.
무엇 무엇이 옳다는 생각에 있어서도, 사람이 보기에는 옳은 것 같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옳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보기에 옳은 것을 고집하거나 주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적인 의입니다. 이 의가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보기에 옳은 것을 좇게 되지요.

1) 세상적인 의
자기적인 의를 세분하면 먼저 세상적인 의, 곧 하나님의 뜻에 명백하게 위배되는 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역사소설이나 무협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의 원수를 갚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굳게 믿고 행하는 것, 이것이 이 사람의 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원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뺨을 한 대 맞으면 다른 편 뺨도 돌려대는 것이지요. 따라서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세상적인 의입니다.

2) 진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의
다음으로 자기적인 의에는 진리를 바탕으로 만든 의가 있습니다. 이 의가 바로 영으로 들어오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존재이지요. 이 의는 진리로 포장되어 있어서 겉모양은 하나님의 의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진리 안에서 만든 의는 믿음의 1단계, 2단계보다는 3단계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의 3단계는 아직 생각으로 짓는 죄, 즉 육신의 일까지 다 버린 것은 아니지만 행위로 범하는 죄 곧 육체의 일은 행치 않는 단계이지요. 이때는 진리를 많이 알고 그 진리를 어느 정도 행할 수 있으며 사명도 맡아 감당합니다. 사명을 감당하면서 열매를 내기도 하지요. 그래서 자신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게 됩니다. 은연중에 자기 생각이 옳고 자기 행동이 옳다는 의식이 자리 잡지요.

누가복음 18장 10~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가 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을 깨우쳐 주시려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말씀해 주십니다. 바리새인은 기도하기를 “나는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합니다. 그런데 세리는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며 기도하지요.
세리는 감히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적을 때는 세리처럼 자기적인 의가 별로 없습니다. 아직 온전히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지 못하지요. 물론 아직 세상적인 의가 남아 있을 수는 있지만 이것은 진리와 명확하게 구분되므로 발견해서 깨뜨리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오면 어느 정도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기 때문에 바리새인처럼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옳다는 의를 깨뜨려야지만 하나님의 뜻을 좇을 수 있고 풍성한 축복을 거둘 수 있지요. 진리 안에서 만든 의는 믿음의 3단계 60%를 넘어서서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울수록 발견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때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혹독한 연단을 허락하셔서 자기 의를 발견하여 깨뜨리게 하셨습니다. 욥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욥은 행위로 볼 때는 아무 흠이 없었기 때문에 순전한 자라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연단이 시작되자 욥의 자기적인 의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불의하고 자신은 의롭다고까지 말하지요. 친구들이 권면을 해도 도리어 비꼬았습니다. 물론 친구들이 옳은 말만 한 것은 아니지만 욥이 참으로 의로웠다면 어떤 말이든 겸허하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욥은 행위적으로는 온전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의롭지 못한 마음이 있었지요. 혹독한 연단을 받은 후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자 그제야 비로소 욥의 의가 깨어집니다. 자신의 무지함과 옳지 않음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었던 것입니다.


2. 틀이란 무엇일까?

틀은 무엇 무엇이 옳다는 생각이 단단하게 굳은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생각의 틀을 만듭니다. 자기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이것이 도덕적으로 옳다.’ ‘이것이 교양 있는 행동이다.’ ‘이 지식이 맞다.’ 등등 어떤 것이 옳다는 생각을 굳혀 나가지요.
단단하게 굳어서 쉽게 바뀌지 않는 생각이 바로 생각의 틀입니다. 이 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성격, 취향, 자라온 환경, 쌓아온 지식과 교양 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이 틀을 객관적인 사실이나 절대적인 진리에 비춰 보면 맞지 않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이 틀을 바탕으로 이것이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하며 분별하지요. 자기적인 의도 바로 이 틀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의 틀을 바탕으로 자신이 옳다고 고집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의이지요.

1) 의와 틀의 관계 - 성벽과 화살
의와 틀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틀은 높고 단단하게 쌓아올린 성벽에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벽돌 하나하나를 쌓아 성벽을 만들듯이 이것이 옳다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굳혀서 자신만의 성을 쌓은 것이 바로 틀입니다.
이렇게 자기만의 성을 쌓으면 대개는 성만 쌓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를 공격합니다. 즉, 성 안에서 타인을 향해 쏘는 화살, 이것이 말하자면 의이지요. 자기 틀이 강한 사람은 자기 틀 안에서 상대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기도 하고 틀렸다, 잘못되었다 하며 상대를 판단하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마치 적에게 화살을 쏘아대는 것과 같지요. 그래서 의가 강한 사람 곁에 다가가면 이 판단의 화살, 비난의 화살에 맞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의와 틀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발견을 잘해야 합니다. 성품에 따라 의와 틀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의사 표현을 잘 안 하기 때문에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도 강한 의가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외향적이라서 목소리도 크고 자기주장이 강한 것 같아 보이는데 의외로 의가 강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도 잘 수용하고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잘 포용하지요. 따라서 외향적인 모습만 보고 의가 강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거나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2) 세상적인 틀과 진리의 틀
틀에도 세상적인 틀과 진리 안에서의 틀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틀이란 세상을 살아오면서 세상의 지식, 교양 등을 바탕으로 만든 틀입니다. 이런 틀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가령, “사람은 유인원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셨다”고 하면 믿지를 못합니다. “과학적 지식이 가장 객관적이다”라는 지식의 틀 때문에 말씀을 받지 못하지요.

다음으로, 진리의 틀은 믿음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를 바탕으로 만든 틀입니다. 바로 이 진리의 틀이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큰 방해 요소가 되지요.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진리의 틀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율법은 물론 장로의 유전까지 힘써 지켰지요. 안식일에는 일정 거리 이상은 걷지도 않을 정도로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 주시자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합니다.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것이지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안식일에 대한 잘못된 틀로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을 판단하고 비난했지요. 이런 것이 바로 진리를 바탕으로 만든 잘못된 틀입니다. 이 밖에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도 않은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다고 장로의 유전을 운운하며 책잡기도 했습니다. 장로의 유전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규정이지요.
오늘날에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교단들은 자신들의 법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단이다, 잘못되었다 하며 정죄합니다. 심지어 부르짖어 기도하거나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금하는 교단도 있습니다. 지극히 성경적인 기도 방법을 자신들이 만든 잘못된 틀 때문에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배운 진리를 가지고 자신이 새롭게 진리의 틀을 만드는 경우입니다. 자신이 보기에는 하나님의 뜻이고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를 바탕으로 형성된 의와 틀은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도 의와 틀을 깨뜨리지 못해서 연단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의 진전도 없고 눈에 보이는 축복의 열매도 없는 답답한 상태가 지속되지요. 욥처럼 사단의 송사로 인해 질병에 걸리거나 가정, 일터, 사업터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험이 왔을 때 의와 틀을 발견해서 깨뜨린다면 축복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감당할 수 없는 큰 사랑을 주십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진한 선의 향을 느낌으로 자신의 의와 틀을 발견하여 부지런히 깨뜨려서 날마다 사랑스러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0-03-16 오후 4:43:27 Posted
2020-03-19 오후 10:26:4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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